“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힘들게 꿈을 키워 보란 듯이 성공한 이들
오늘날 수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는 스타들이지만, 그들이 자란 곳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낡은 판자촌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 속에서 미래를 꿈꾸던 이들. 누군가는 철거 직전의 집에서 나와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월세 20만 원을 내며 겨우 버텼다.
흙탕물 속에서 시작된 그들의 삶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곳으로 향했다. 이제는 누구나 알 만한 스타가 된 그들이 가난과 싸우며 겪었던 절박한 순간들은 오히려 그들의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던 판자촌에서 꿈을 키워, 결국 세상을 뒤흔든 스타가 된 이들. 이들의 인생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다. 용이 되어 날아오르기까지, 이들은 어떻게 그 험난한 길을 버텼을까?
월세 20만 원짜리 집에서…
김무열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보증금 200만 원, 월세 20만 원짜리 판자촌에서 살았다. 지인들이 쌀과 기름을 가져다줄 정도로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배우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3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병역 면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의 소속사는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가정에 빚이 생겼고, 김무열은 사실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또 다른 스타, 정우성 역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집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철거 직전에 나가야 했던 기억이 있다”며, 가난의 상징이었던 벽이 무너졌을 때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정우성은 가난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난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극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를 것을 다짐했고, 결국 그는 연예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연예계 톱스타이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따뜻한 정우성의 선행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동생이 죽은 후에야…
이봉원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그는 국민학생 시절 어머니가 엿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고백했다. 판자촌에서 생활하던 그는 동생의 죽음 후에야 비로소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그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 58세일 것이다”라며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그 이후로 그는 더 열심히 일해 가족을 위한 집을 마련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행사와 야간업소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웃음을 주는 개그맨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그의 이야기는 그저 코미디 이상의 울림을 준다.
이처럼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을 거둔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이들은 모두 판자촌에서 시작해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세상은 이들을 흙탕물에 가둬두려 했지만, 결국 이들은 ‘용’이 되어 그곳에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