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인 감독의 영화를 승낙한 사연
2019년 영화 ‘기생충’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예술영화 축제인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에서도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을 한국 영화 최초로 수상하며 화제가 됐다.
20년 동안 많은 작품을 함께 한 이들의 첫 작품은 2003년 개봉한 ‘살인의 추억’이었는데, 당시에도 송강호는 ‘쉬리’,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에 출연했던 충무로의 인기 스타였다.
하지만 봉준호의 작품은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하나가 전부였으며, 이마저도 흥행에 실패했던 신인 감독이었지만 잘나가던 송강호를 섭외해 우뚝 일어설 수 있었다.
2000년 한 행사장에서 그를 마주친 봉준호는 당시 영화의 성적이 좋지 않아 의기소침했던 상태였는데, 송강호가 먼저 다가와 “어제 ‘플란다스의 개’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대면서 봤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용기를 얻은 봉준호는 두 번째 작품인 ‘살인의 추억’을 기획하였고, 어떤 배우를 섭외할지 고민하다 과거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던 그를 떠올렸다.
떠오르는 스타였던 송강호가 그의 작품에 출연해 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데뷔작으로 실패를 맛본 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봉준호는 차마 그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전화를 걸었는데, 놀랍게도 수화기 너머의 송강호가 “나는 우리가 5년 전에 만났을 때부터 당신 영화에 출연하기로 다짐했다”라고 말했다.
5년 전에 무슨 일이?
알고 보니 이들의 첫 만남은 2000년 행사장이 아니라 1997년 무명 배우였던 그가 단역에 지원하기 위해 찾았던 오디션 현장이었다.
당시 송강호는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조연으로 활약했지만 얼굴이 알려진 상태는 아니었는데, 조감독이었던 봉준호가 먼저 다가와 “영화 너무 잘 봤다”라며 먼저 인사해 주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이 오디션에서 떨어졌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아 답답해하던 중이었는데, 이때 송강호에게 삐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봉준호로, 여기에는 이들이 함께 영화를 찍지 못하게 된 이유와 “언젠가 좋은 기회가 닿으면 다시 만나 작품을 찍고 싶다”라는 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사이에 국민 배우로 성장한 송강호가 행사장에서 그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으며, 봉준호의 각본을 받자마자 출연을 승낙한 것이다.
이 영화가 바로 어마어마한 흥행을 이룬 ‘살인의 추억’으로, 이후로도 둘은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을 모두 성공시키며 국내외에서 최고의 콤비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한편, 송강호는 개봉 예정인 영화 ‘1승’에 출연하였으며 영화 ‘내부자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 캐스팅되었음을 알린 바 있다.
또한 봉준호 감독은 SF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키17’과 CG 애니메이션 영화 ‘심해어’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서로 때문에 용기를 얻었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다”, “첫 만남도 무슨 영화 같네”, “앞으로도 영화 많이 찍어 주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