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그의 힘들었던 시절과 찾아온 기적
배우 조우진은 16년의 긴 무명 생활을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결코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촬영장에 도착했지만, 정작 현장에선 그의 자리에 다른 배우가 서 있었다.
분장까지 마친 뒤에서야 배역이 교체된 것을 알게 된 그는, 그저 묵묵히 촬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소주 두 병을 비우며 그는 자문했다. “과연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지만 돌아오는 건 실패와 좌절뿐이었다.
조우진은 1999년, 단돈 50만 원을 들고 서울로 상경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기의 길로 뛰어든 그였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무대에 오를 기회가 드물었던 그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물류창고, 편의점, 공장 등을 오가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연극과 단역을 전전하며 견딘 끝에, 마침내 2015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 상무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충무로의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이병헌은 “조우진이라는 배우는 반드시 주목받을 거라 확신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기적이 찾아오다
‘내부자들’ 이후 그는 드라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38사기동대’를 비롯해 ‘국가부도의 날’, ‘도굴’ 등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종횡무진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러다 한 해 동안 아홉 편의 영화가 개봉하는 일도 있었다. 개봉 시기가 맞물린 덕분에 조우진의 얼굴을 극장에서 연이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선배 배우들은 “작작 좀 해라”라며 농담을 던졌고, 매달 같은 식당에서 시사회 뒤풀이를 가지다 보니 “오늘도 그 메뉴 드시죠?”라고 반기는 직원들 덕에 바쁜 일상을 실감하기도 했다.
조우진에게 가장 특별했던 순간은 2021년 영화 발신제한에서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일이었다. 극 중 주인공 성규 역으로, 아이들과 출근길에 나섰다가 정체불명의 발신 번호로 협박을 당하는 절박한 아버지 역할을 열연한 그는 그간의 내공을 쏟아내며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개봉 후 팬카페에 “1999년 50만 원을 들고 상경한 내가 오늘 주연으로 서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신스틸러로 꼽을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딱히 없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볼 때가 최고의 순간”이라며 특유의 겸손함을 드러냈다.
차기작인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강남 비-사이드’에 대해서는 “이번 작품에서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며 기대감을 자아냈다. 이 드라마는 강남의 어두운 이면을 배경으로 한 추격 범죄물로, 조우진은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을 예고했다.
출근해 자신의 자리에 다른 배우가 서 있던 날부터, 한 해 아홉 작품이 동시에 개봉하는 배우로 거듭나기까지. 오랜 시간 견뎌온 인내와 노력 끝에 조우진은 이제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