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행사 200개 뛰며
‘행사의 제왕’이었지만…
트로트 가수 박현빈은 2006년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빠라빠빠’로 데뷔하자마자 정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후로도 ‘앗 뜨거’, ‘곤드레 만드레’, ‘샤방샤방’, ‘오빠만 믿어’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특히 ‘곤드레 만드레’ 때는 한 달에 행사를 150개에서 200개까지 진행하며 ‘행사의 제왕’이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당시 그는 링거까지 맞으며 아침부터 밤까지 열정을 불태웠다.
본인이 직접 그때의 수익을 밝힌 적은 없으나, 보편적인 톱스타의 행사비로 계산해 봤을 때 한 달에만 20억 원 이상 벌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데.
그 많은 돈은 어디로?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연거푸 실패했고 이 때문에 그의 부모님에게는 보통 중소기업 정도로 어마어마한 빚을 가지고 있었으며, 네 가족은 외갓집의 단칸방에 얹혀살아야 했다.
박현빈의 어머니는 “희망이라는 게 아예 없었다. 부자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죽기 전에 빚만 다 갚는 게 목표였다”라며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성공적으로 데뷔를 마친 그는 자신이 부모님의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빚 목록이 적힌 가계부 수첩을 받았다. 처음으로 그가 갚아야 할 액수를 마주했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고.
박현빈은 1년 반 동안 차에서 자고 화장실에서 자면서 한 달에 200개 정도의 행사를 뛰었지만, 자신은 만 원짜리 한 장 가지고 다니지 않고 전부 부모님의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그러던 도중 4중 추돌사고를 당했고, 부상이 심각해 의사에게 평생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고. 그는 1년 6개월 동안 입원하며 두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오른쪽 대퇴부와 정강이뼈가 산산조각 났지만 의식은 잃지 않아 모든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이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으며 차를 타는 것도 어려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현빈은 빚을 갚기 위해 기차를 타고 행사를 다녔고, ‘오빠만 믿어’로 활동할 때 드디어 20여 년 동안 가족을 괴롭혔던 빚을 전부 갚게 됐다. 당시 온 가족이 울면서 다시는 돈을 빌리지 말자고 약속했다고.
이후 박현빈은 자신이 번 돈으로 오랜 꿈이었던 자신의 집을 직접 짓기도 했으며, 그의 어마어마한 대저택이 방송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인천 영종도가 개발되기 전 그가 모든 것을 골라 직접 지었다는 집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장식들이 돋보여 감탄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한 아파트 단지에 함께 모여 살고 있다고. 그는 현재 미모의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진짜 효자네”, “너무 수고했어요”, “이제 아내랑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시길”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