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치료할 수 없어서…”
그가 한국을 떠나야 했던 놀라운 병명
한국 학교에서의 팍팍한 일상이 싫어졌던 한 소년. 배우 이서진이 자신의 유학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으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사실, 사람들은 이서진을 화려한 엘리트 집안의 후계자로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의 총재를 지냈고, 아버지는 금융업계의 거물이었다. 그 자신도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금융업계에서 한동안 일한 적이 있으니, ‘금수저’라는 말이 그에게 어울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미국행이 ‘부자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야기의 시작은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서진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다. 한국 학교의 엄격한 분위기와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방문한 미국에 완전히 매료됐다.
팝송과 영화에 심취해 성적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부모님조차 “얘를 그냥 미국에 보내야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고등학교도 못 간다 할 정도였다”며 웃픈 사연을 털어놓은 그는, 결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았다.
꿈에 그리던 미국으로 떠났지만…
유튜브 ‘십오야’의 ‘뉴욕뉴욕2’ 촬영 중, 이서진은 유학 시절을 보냈던 브루클린 하이츠 근처를 다시 찾았다. 그는 “미국에서 이 동네가 자동차 보험료가 제일 비싸다. 그래서 차가 있는 사람들은 꼭 차에서 내릴 때 스테레오를 챙겨 다녀야 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당시 살던 빨간 벽돌집을 발견한 이서진은 “내가 여기 살 때는 청소를 안 해서 지저분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사는 사람은 되게 잘 지낸다”라며 감탄했다.
이서진은 그곳에서 영어 토론 수업에 매일 좌절했다며 “한마디도 못 하고 앉아 있었던 게 정말 답답했다. 공부를 너무 못해서 학교의 수치였다”고 웃으며 고백했다.
하지만 그의 미국 생활이 모두 고생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하루 두 편씩 비디오를 빌려 영화를 보며 살았다”는 이 시절의 취미가 오늘날 배우로서 그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보단 영화에 빠져 지낸 그 시절 덕분에 지금의 이서진이 있게 된 셈이다.
물론, 그의 화려한 집안 이야기는 언제나 화제다. 사람들은 이서진의 재산이 600억 원대라는 소문을 종종 언급하곤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돈이 많았으면 ‘꽃보다 할배’에서 짐꾼을 하고 다녔겠냐”며 특유의 유머로 소문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안 배경이 남다른 것은 사실. 그는 뉴욕대 졸업 후 금융업계에서도 활동하며 집안의 명성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성적 스트레스와 미국에 대한 동경이 만든 이서진의 유학기. 그는 ‘어쩔 수 없이’ 떠난 뉴욕에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했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배우로서의 지금은 그때의 모든 경험이 모여 이루어진 결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