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제사가 무려 12번?
고달팠던 8남매 맏며느리의 삶
배우 김성녀는 48년간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운명이었나 싶다”라고 회상했다.
한때 비혼주의자였던 그녀가 남편 손진책 연출가와 결혼해 8남매의 맏며느리가 된 이야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 공개된 김성녀의 러브스토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다.
김성녀는 남편 손진책과 같은 극단에서 연기를 하다 만났다. 미혼 여배우로서 많은 남자 배우들의 관심을 받던 시절, 손진책은 유독 무관심하게 그녀를 대했다.
김성녀는 “마치 형이 동생을 돌보듯 살펴주더라. 그게 신선했고 묘하게 마음이 끌렸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량 같은 생활을 했던 탓에 “나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배우들과의 술자리 후 통금시간이 지나며 ‘역사’가 이뤄졌고,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김성녀는 “그렇게 비혼주의를 접고 속도위반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하자마자 어마어마한 시집살이가 시작됐다”라고 토로했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가볍지 않았다. 8남매의 맏며느리로서 수십 번의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했고, 공연과 시댁 일 사이에서 쉼 없이 달려야 했다. 김성녀는 “1년에 제사만 12번이 넘었다. 제사 음식은 이제 눈 감고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무대에서 이런 일까지 있었다고?
마당놀이 대모로 불리는 김성녀의 무대 인생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중에 너무 배가 고파 급하게 떡을 먹었는데, 급체를 해서 관객 앞에서 숨도 못 쉬겠더라. 그때 명연기가 탄생했다” 라며 마당놀이 공연 중 급체로 숨이 막혔던 순간을 기지로 넘긴 일화를 털어놓아 감탄을 자아냈다.
심지어 무대 위에서 동료 배우 윤문식의 바지를 즉흥적으로 내려 관객들을 폭소케 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무대 위에서의 기지와 유쾌함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김성녀의 대표작이 된 연극 ‘벽 속의 요정’은 남편 손진책이 연출한 작품으로,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1인 32역을 소화하는 이 공연은 그녀의 경력과 혼이 담긴 무대다.
김성녀는 “젊었을 때 남자 역을 많이 맡아본 덕분에 여러 배역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변신이 설득력 있게 다가가야 했기에 늘 고심했다”라며 연기에 대한 고민을 밝혔다. 남편 손진책은 “이 작품은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찬가”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연극과 제사, 가족과 무대라는 양 끝의 삶을 끌어안고 살아온 김성녀. 그녀는 “결혼 생활이 힘들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부부가 아니라 동지였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예술과 가족 모두 쉽게 놓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김성녀는 여전히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힘 조절을 배우며 새 도전을 꿈꾼다. “이번 공연이 성공한다면 30년까지도 도전할 거다”라는 그녀의 말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