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날짜도 잡았던 그녀 대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이유
같이 살던 약혼녀가 있었지만, 갑자기 다른 여자와 결혼과 임신 소식을 전한 배우. 바로 196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스타, 신성일이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신성일은 당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였던 엄앵란과 결혼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결혼 전,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재일교포 배우 공미도리와 약혼한 상태였다.
공미도리는 세련된 외모와 서구적인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로, 신성일의 어머니 역시 그녀를 며느리로 점찍었을 정도였다.
공미도리는 약혼 이후 신성일 집에서 함께 지내며 가족들과 가까운 관계를 쌓아갔다. 신성일은 “당시 스케줄이 너무 바빠 공미도리와 일주일에 한 번밖에 촬영을 못했다. 그녀는 촬영이 없는 날에는 우리 집에서 머물며 어머니와도 친밀하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은 결혼 날짜까지 잡으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신성일은 돌연 엄앵란과의 혼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엄앵란은 임신 3개월 차였다.
결국 그는 공미도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엄앵란과 결혼하게 되었다. 신성일은 “어머니도 엄앵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결혼 당시의 복잡했던 상황을 털어놓았다.
파란만장했던 결혼생활
이후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생활은 영화처럼 극적이었다. 신성일은 결혼 후에도 배우 김영애와 비밀 연애를 이어가는 등 끊임없이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는 “아내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김영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나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엄앵란은 끝까지 신성일을 책임졌다. 그는 신성일을 “내가 책임져야 할 큰아들”이라고 표현하며 병원비를 대고, 그의 곁을 지켰다. 결혼생활의 절반 이상을 별거로 보냈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가장 힘들 때 기둥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신성일은 생전에 자신의 묏자리를 마련하며 “엄앵란과 함께 묻히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엄앵란은 자식들에게 “나는 한강에 뿌려달라”고 부탁하며 죽음에 대한 가치관마저 달랐다.
공미도리와 함께 살던 약혼 생활부터 엄앵란과의 파란만장한 결혼, 수많은 스캔들까지. 신성일의 삶은 영화보다도 더 복잡하고 화려한 이야기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