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보아보다 더”
80년대 청순 미모와 허스키한 음색으로
일본을 사로잡았던 엔카 가수의 근황
80년대 한국과 일본을 주름잡았던 엔카 여왕의 근황이 알려지며 그의 과거 또한 재조명됐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 출신 가수 계은숙이다.
그는 일본의 대표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에 7년 연속 출연하며 조용필의 4회 출연과 보아의 6회 출연을 넘어서는 최다 출연 기록을 세웠다.
사실 엔카 가수로 대성공하기 전, 그는 아역배우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명동에서 어머니를 도와 우산과 껌을 팔던 그는 향후 KBS 드라마 제작국장이 된 최상식 PD의 눈에 띄어 배우로 데뷔했다.
동화 속 주인공이 살아나온 것 같았다던 그는 KBS의 최초 어린이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그의 예쁘장한 얼굴과 다르게 허스키한 목소리는 연기자로서 걸림돌이 됐고, 노래가 하고 싶었던 흥미에 따라 그는 고등학생 2학년 때 가수로 전향했다.
데뷔곡 ‘배 타고 간 님’으로 1978년에 데뷔한 그는 2년 후 발표한 ‘노래하며 춤추며’와 ‘기다리는 여심’으로 대박을 터트리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상을 받고 연속된 히트곡으로 가요계를 날아다니던 그는 돌연 일본으로 떠나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다.
사랑하는 이를 잊기 위해 떠난 일본에서 대성공
이는 한국에서 사랑했던 남자를 잊지 못해서라는데. 그는 명문가 자제와 교제하며 결혼 이야기가 나왔지만, 상대방 집의 반대가 심했다. ‘홀어머니에 딴따라와는 결혼시킬 수 없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내 아들과 헤어져 달라며 쥐여 준 돈봉투를 거절한 그는 사랑하는 연인과 더 이상 만날 수 없고 어머니의 가슴도 아프게 하기 싫어 일본으로 떠났다.
홀로 일본어와 노래 공부를 하며 일본에서 데뷔한 그는 ‘오사카의 황혼’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연속으로 히트곡을 낸 그는 각종 음악상을 휩쓸며 최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가수’ 계은숙으로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사람’ 계은숙으로서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98년 이혼과 2001년 전 소속사와의 억대 규모의 소송을 겪으며 심신이 지쳐갔다.
더불어 2007년 그는 각성제 복용 혐의로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20여 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두통을 달고 살았던 그가 각성제를 두통약인 줄 알고 잘못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일본에서 추방당하다시피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십 년 지기 친구의 보증을 섰다가 120억 원에 이르는 돈을 사기당하고 만다.
일본에서 번 모든 돈을 쫄딱 잃은 그는 이후 마약 투약 혐의와 사기 혐의로 수감생활을 하며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칠 준비
그 후 국내 방송 활동을 거의 중단했던 그가 2019년 새로운 소식을 들려왔다. 약 37년 만에 새 정규앨범 ‘리:버스(Re:Birth)’ 발매하며 팬들을 위한 소규모 공연을 진행했다고.
이어 작년 한 매체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 아줌마들처럼 잘 지내고 있다.”라며 “제 명예와 신용을 회복하는 일로 재 충전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진짜 매력적인 가수였는데 이제는 앞길에 평온한 인생만이 계속되길 바라봅니다”, “지금 봐도 일본 사람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네요”, “얼굴도 너무 예쁜데 음색도 최고. 한 번 들으면 못 벗어남”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