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평 대저택에서 단칸방으로
80년대 인기 스타의 파란만장 인생
1980년대, 가수 허윤정은 그의 대표곡 ‘그 사나이’와 ‘관계’ 등 록 사운드와 파격적인 무대 퍼포먼스로 당대 밤무대를 장악했다.
하루 14~15개 행사를 소화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그는 TV 프로그램 ‘쇼 쇼 쇼’를 통해 계은숙, 방미 같은 톱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가요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는 전성기의 정상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으로 돌연 가요계를 떠났다.
결혼과 함께 찾아온 시련의 시작
당시 100평 대저택에서 살며 부유한 삶을 누렸던 그의 결혼 생활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결혼 생활은 점점 어긋나기 시작했다.
허윤정은 전남편에 대해 “처음엔 키도 크고 잘생긴 데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모습이 착해 보였다”며 뜨거운 대시 끝에 빠르게 결혼에 골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혼 후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낳으며 가정에 전념하던 그는 남편의 업소 일로 인해 달력에 남편의 귀가 날짜를 적어야 할 만큼 홀로 가정을 지켰다.
급기야 남편은 여행을 핑계로 그를 미국과 캐나다로 데려간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에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쉽게 돈을 벌어들였지만, 체계적인 관리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도박으로 재산을 날렸고 사업 실패까지 겹치며 빚을 지기 시작했다. 허윤정은 “집에 차압 딱지가 붙었을 때 너무 속상했다”며 대저택과 외제차, 호화로운 생활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는 단칸방으로 옮겨 연년생 남매를 키워야 했다.
남편의 이혼 요구로 합의 이혼을 선택한 후, 그는 생계를 위해 간병인, 야간 아르바이트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해야만 했다.
“할머니 대소변도 받았고, 잘 곳이 없어서 야간 근무를 선택했다”며 눈물을 쏟던 그는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와의 끈끈한 유대가 그를 버티게 해준 또 다른 이유였다. 15년간 함께 갈빗집을 운영하며 다시 삶의 안정을 되찾았다.
아이들과 언니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낸 허윤정은 이제 다시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알려진 33년 만의 가요계 복귀 소식에 누리꾼들은 “이토록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노래하는 모습이 멋지다”, “허윤정의 재도약을 응원한다”며 그를 지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