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국민 여동생 이재은이
대 국민적 인기에도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
90년대 모든 드라마와 영화의 ‘예쁘고 착한 아이’ 역할을 맡으며 똑소리 나는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가 있다. ‘예쁜 아이 선발대회’에서 3위로 입상하며 주목받은 이재은은 1984년 만 4살 나이에 화장품 광고 모델로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며 데뷔했다.
이후 모든 아동복 브랜드 모델을 휩쓸며 매년 3, 40편의 광고를 찍었던 그는 드라마 ‘토지’, ‘일월’, ‘한명회’ 등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4살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
당시 월수입이 1,000~ 2,000만 원 정도 됐다는 그는 아역 배우 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30여 년간 활동했다. 그가 어린 나이부터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했던 데에는 마음 아픈 가족사가 숨어있었다.
여러 번 사업에 실패했던 그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사업을 시도했고, 어머니는 이를 위해 비자금을 만드느라 계를 들며 늘 빚에 시달려야 했다.
집의 모든 돈을 벌고, 아버지의 빚을 갚느라 바빴던 이재은은 데뷔 후 친구랑 놀아본 적도 없을 정도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고 부모님의 사이는 갈수록 안 좋아졌다.
심지어 그는 빚을 갚기 위해 수위 높은 영화 ‘노랑머리’에 출연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당시 아역배우 이미지가 강했던 그의 노출 연기로 관객들의 평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고,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에 비난을 쏟는 여론도 있었다.
가장의 짐을 내려놓고 싶었던 이재은은 결국 도피처로 26살의 이른 나이에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선택했다.
결혼 후 어머니와 멀어진 그는 “부모님에게 해줄 만큼 해주고 나왔으니 내 가정에 항상 더 충실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부모님과 약 8년 동안 전화는 물론, 왕래를 하지 않았지만 그가 도망쳐 나온 곳도 자유롭지 않았다.
다른 성격과 가치관으로 남편과 부딪힌 그는 결혼 10년 만에 이혼했고 한 방송에 출연해 “내 인생에 더 이상 결혼은 없다. 혼자 사니 너무 편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로운 중년의 삶 시작
그러던 어느 날 이혼 후 다시 엄마와 합가한 이재은은 후배를 통해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 남자는 이재은보다 3살 어린 착하고 듬직한 일반인으로, 골프 게임을 핑계로 첫 만남을 약속했다.
처음에는 연하라는 점과 너무 먼 거주지 탓에 호감이 생기지 않았지만 그들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고, 당시 43세였던 그는 노산임에도 건강한 아이를 가지며 재혼과 임신 소식을 함께 전했다. 남편을 따라 광주광역시에 정착한 이재은은 본인을 똑 닮은 두 살배기 아이와 함께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성숙한 연기가 아픔에서 나왔던 거군요.”, “꼭 다시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지나간 일은 다 잊고 아이와 행복한 앞날이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