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에게 말대꾸했던
직원은 과연?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한 1970년대에는 전국에 고속도로가 깔리기 시작했고, 이 위를 현대자동차가 만든 첫 국산 자동차인 ‘포니’가 힘차게 달렸다.
하지만 당시 현대에서 직접 자동차를 만든다고 선언했을 때 많은 이들은 “미친 거 아니냐”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우리나라는 6·25 때 유엔군이 탔던 트럭이나 버스를 개조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한 부품을 조립해 겨우 자동차를 만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의 결심은 확고했고, 이에 현대자동차의 엔지니어 다섯 명은 그의 특명을 받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당시 한국은 작고 생소한 나라였고, 엔지니어들은 자동차 도면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밤을 새워가며 이들의 기술을 배웠다.
이후 일본과 미국에서도 도움을 받은 끝에 1975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처음으로 ‘포니’가 등장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고유한 자동차 모델을 개발한 국가가 됐다.
감히 회장님에게 말대꾸를?
‘포니’가 성공하자 현대자동차는 후속 모델인 ‘프레스토’와 ‘엑셀’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자동차를 보러 온 정주영 회장이 “차가 작다. 손잡이를 키우면 어떠냐”라고 말했다고.
모두가 조용했던 그 순간에 한 직원이 “손잡이를 바꾸면 일정을 맞출 수 없고, 중량이 늘어나 설계에도 문제가 생긴다”라고 대답하며 정 회장과 논쟁을 벌였다.
이후 회식 자리에서 비서실장이 “쓸데없는 일로 회장님께 말대꾸했으니 조용히 구석에만 앉아 있어라”라고 말했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숨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주영 회장이 “그놈은 어디 있냐”라며 그를 찾았고, “앞으로 잘하라”라며 응원해 준 것.
그 직원은 바로 외국에서 자동차 기술을 배워 ‘포니’를 개발하였으며, 능력 하나로 말단 직원에서 사장 자리까지 올랐던 이충구 前 사장이다.
그는 자신을 인정해 줬던 정주영 회장이 그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직접 영구차를 제작하기도 하였으며, 영정 사진 역시 대통령보다 크게 만들어 걸었다고 전하며 그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둘 다 정말 대단하네”, “회장님께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걸 귀담아듣는 그릇이 멋지다”, “지금의 한국을 이루신 분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