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조8천억원. 국산 차세대 구축함 6척을 만드는 데 투입될 예산이다. 이 천문학적 수주전의 승패를 가른 것은 최첨단 기술도, 가격 경쟁력도 아닌 ‘보안감점 1.2점’이었다.
방위사업청은 7월 2일 한화오션을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했다.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의 이의신청도 전날 기각되면서, 약 2년간 표류해온 KDDX 사업자 선정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다.
0.59점 차 역전극…감점이 없었다면?
방사청이 지난 6월 11일 공개한 제안서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을 약 0.59점 차로 앞섰다. 그런데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면이다.
HD현대중공업은 순수 기술능력 평가에서는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거 KDDX 군사기밀 유출 사건으로 인해 부과된 보안감점 1.2점이 최종 총점에서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사건의 발단은 HD현대중공업 임직원 9명이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수행하던 KDDX 개념설계 자료를 무단 촬영·유출한 혐의다. 법원은 전원 유죄를 선고했고, 2022년 11월과 2023년 12월에 걸쳐 형이 확정됐다. 방사청은 이를 근거로 2025년 12월부터 2026년 12월까지 1.2점의 보안감점을 적용 중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이 감점 연장 조치에 반발해 서울중앙지법에 적용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5월 5일 기각됐고, 이번 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도 최종 기각됐다. 법원과 방사청 모두 감점의 정당성을 인정한 셈이다.
‘미니 이지스함’ KDDX, 어떤 전투함인가
KDDX는 단순한 구축함 사업이 아니다. 한국 해군 역사상 최초로 국내 전투체계·레이더·추진 시스템을 통합한 ‘완전 국산 구축함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한다.
만재 배수량 8,000톤에 근접하는 7,000톤급 함체에는 통합 전기 추진 시스템(IEPS)이 적용된다. 이는 한국 해군 전투함 최초의 시도로, 기계 소음 감소는 물론 고출력 레이더와 미래 고에너지 방어 시스템 운용을 위한 전력 여유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센서 체계도 주목할 만하다.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통합 마스트에 S밴드·X밴드 듀얼 밴드 능동위상배열레이더(AESA)를 탑재해 장거리 탄도미사일 탐지부터 근거리 방공 교전까지 전 영역을 커버한다.
무장은 Mk 45 127mm 함포, 국산 CIWS-II 2기, 해성 대함미사일, KVLS 복합 수직발사체계 등으로 구성되며, 기존 SM-2를 대체할 국산 장거리 함대공미사일 탑재도 목표로 한다. 방공·대잠·타격을 아우르는 진정한 다목적 전투함이다.
2032년 선도함 인도…한화오션의 ‘리딩 플레이어’ 부상
방사청은 이달 중순부터 한화오션과 본격 협상을 시작해 8월 말 최종 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상세설계를 거쳐 선도함은 2032년 말 해군에 인도되고, 2028년 말부터는 후속함 5척 발주가 순차적으로 진행돼 2036년까지 전체 전력화가 완료될 전망이다.
다만 약 2년의 사업 지연은 뼈아프다. 당초 2024년 착수 계획이 경쟁 과열로 표류하면서 전력화 시점이 그만큼 뒤로 밀렸고, 북한과 중국의 해군력 증강 속도를 감안하면 중·대형 구축함 확보의 공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