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자·빵·음료부터 제지·철강까지, 국민 식탁과 산업 공급망의 뿌리를 건드린 담합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일 대상, 사조CPK,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전분·전분당 제조 4개사가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7년 5개월간 B2B 판매가격을 13차례 공동 조율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합계는 7,476억 원으로, 지난 5월 밀가루 담합 7개사에 매긴 6,710억 원을 뛰어넘는 공정거래 제재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담합으로 영향을 받은 관련 매출액은 6조 525억 원에 달한다.
정부 혜택은 기업 이익으로…할당관세 0%의 역설
이번 담합의 핵심 아이러니는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21년 4월부터 매년 약 200만 톤의 가공용 옥수수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해 원가 부담 완화를 지원했다. 전분당 제조원가에서 옥수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60~70%에 달한다.
그러나 공정위 조사 결과, 4사는 이 정책 혜택을 거래처나 소비자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제 옥수수 가격이 오를 때는 원가 상승분을 신속히 전가(8차례)하고, 가격이 내릴 때는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5차례)으로 이익을 극대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던 2022년 11월에는 전분당 판매가격을 1㎏당 971원까지 올려, 담합 시작 시점(2018년 5월·559원) 대비 최대 73% 인상했다. 반면 옥수수 가격 하락 국면에서는 원가 인하 폭보다 판매가격 인하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영업이익을 오히려 개선했다.
대상의 영업이익은 2023년 901억 원에서 2025년 1,505억 원으로, 사조는 같은 기간 140억 원에서 361억 원으로 불어났다.
‘우체국 동행’까지…치밀했던 이행 점검
담합의 수위는 단순한 가격 합의를 넘어섰다. 4사는 목표 가격을 정한 뒤 ‘품앗이 대응’ 전술을 구사했다. 예를 들어 1㎏당 730원으로 합의하면, 주관사는 730원을 제시하고 나머지 3사는 735~740원 등 더 높은 가격을 불러 거래처가 730원을 ‘타협안’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
이행 점검도 치밀했다. 공문 발송일에 4사 관계자들이 서로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품목별 인상 폭과 수신처 주소가 제대로 기재됐는지 확인했다. 이후 우체국까지 따라가 공문이 실제로 발송되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기도 했다.
B2B 전분 시장에서 4사의 점유율은 95.7%, 전분당 시장에서는 86.4%로 사실상 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과징금 넘어 ‘가격 재결정 명령’…공정위의 새 칼날
공정위는 과징금 외에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을 함께 내렸다. 4사는 전분당 제품 가격을 담합 이전 경쟁 수준으로 각자 독자적으로 재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이 명령은 밀가루(2006년·2026년 5월), 인쇄용지(2026년 4월)에 이어 네 번째로 부과된 것으로, 2026년 들어 원재료 담합 제재의 새로운 표준 수단으로 자리 잡는 양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