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가계부채 비율이 4년 연속 낮아지고 있지만, 이를 두고 ‘빚이 줄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경고가 나왔다. 부채 잔액 자체는 오히려 늘고 있고,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최상위 고부채 국가 그룹에 머물러 있다.
18일 나라살림연구소 김진욱 책임연구원의 ‘나라살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1.14%로 집계됐다. 전년(172.56%) 대비 1.42%p 하락한 수치로, 2021년 정점(193.38%) 이후 4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하락이 ‘빚을 갚아서’가 아니라 ‘소득이 더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구조적 문제가 해소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숫자는 개선, 부채 잔액은 되레 늘었다
가계부채 잔액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23년 한 해(-0.81%)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줄지 않았다. 증가율도 2024년 2.34%에서 2025년 3.11%로 다시 확대됐다.
김 책임연구원은 “2024년 이후 가계부채 증가율이 오르고 소득 증가율이 둔화되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OECD 7위·BIS 6위…세계 최상위 고부채 그룹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위치는 여전히 불안하다. OECD 38개국 중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네덜란드·호주·덴마크·캐나다·스웨덴·룩셈부르크에 이어 7위로, 전년과 동일한 순위를 유지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도 마찬가지다. 2025년 말 한국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8.6%로, BIS가 집계한 44개국 중 스위스·호주·캐나다·네덜란드·뉴질랜드에 이어 6번째로 높다. 이는 2019년 3분기 말(88.3%) 이후 6년 3개월 만의 최저치지만,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최상위권이다.
임계값 이미 돌파…내수 억제 구간 진입
더 심각한 문제는 부채 수준이 내수를 옥죄는 임계점을 이미 넘었다는 점이다. 2025년 발표된 한국 관련 실증 연구에 따르면, GDP 대비 가계부채가 82~84%를 초과하면 부채 증가가 민간소비를 오히려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현재 한국의 88.6%는 이 구간을 명확히 상회하는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의 가계부채 잔액은 2008년 말 대비 2024년 말까지 각각 약 43% 증가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가계부채는 179.7% 증가해, 두 나라보다 네 배 이상 빠르게 불어났다.
김 책임연구원은 “내수 기반 확충과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본격적인 디레버리징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