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말고 이곳으로 갑니다”… 천년 고찰의 기와지붕 아래 피어난 ‘차분한 보랏빛’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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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처마 끝 보랏빛 번지는 도량
기암협곡 사이로 쏟아지는 물줄기
역사와 자연이 맞닿은 초여름 산사
고찰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포항시 보경사, 촬영자 장재윤)

토양의 성질에 순응하며 파란색과 보라색, 분홍색 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수국은 초여름 풍경의 전령사다.

최근 도심의 인공적인 정원을 벗어나 울창한 숲과 유서 깊은 사찰에서 자연스러운 미를 발산하는 꽃을 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빛바랜 단청과 고풍스러운 기와, 투박한 장독대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꽃잎은 화려함을 넘어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남의 명산 자락에 자리한 한 고찰은 이러한 계절의 미학과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청량한 폭포수를 동시에 품고 있어, 단순한 꽃구경을 넘어선 심산유곡의 여정을 제안한다.

고찰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포항시 보경사, 촬영자 장재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에 터를 잡은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시절에 문을 연 이후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도량이다.

내연산의 수려한 산세가 사찰을 포근히 감싸 안은 구조로, 불교 문화재 답사와 역동적인 계곡 트레킹을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명소로 정평이 나 있다.

계절의 시계가 6월로 접어들면 경내 전각 주변과 정원, 그리고 금강송 군락지가 호젓하게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수국이 일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현재인 6월 초순에는 본격적으로 꽃망울을 터뜨리기 전의 풋풋한 단계를 지나고 있으며, 다가오는 6월 중순을 기점으로 7월 초순 사이에 도량이 가장 화려하게 물들 것으로 전망된다.

고찰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포항시 보경사)

이 오래된 사찰이 지닌 문화적 자산 역시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사찰의 중심을 잡고 있는 보물 적광전은 맞배지붕의 단아한 선이 돋보이는 목조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울러 고려시대 고승의 올곧은 행적을 정교한 석조 예술로 표현해낸 원진국사비와 승탑 또한 나란히 보물로 지정되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의 성군 숙종이 내연산의 수려한 가경에 감탄하여 친히 남긴 시를 새겨놓은 숙종 어필 각판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이곳이 예로부터 문인과 통치자들의 찬사를 받던 공간임을 증명한다.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사찰의 기나긴 역사를 대변하는 400년 수령의 탱자나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이다.

전각을 벗어나 산의 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보경사 여행의 백미인 내연산 계곡이 위용을 드러낸다.

산의 골짜기를 따라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12개의 폭포가 연이어 나타나는데, 사찰에서 약 1.5㎞가량 완만한 길을 걸어 올라가면 두 갈래의 물줄기가 정답게 떨어지는 제1폭포인 상생폭포를 마주하게 된다.

고찰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포항시 보경사, 촬영자 장재윤)

여기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협곡의 심부로 진입하면 신비로운 관음굴을 호위하듯 흐르는 관음폭포와, 약 30m 높이에서 거대한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연산폭포가 등장한다. 학소대 절벽의 기암괴석과 웅장한 연산폭포가 결합한 풍광은 내연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절경으로 손꼽힌다.

방문객의 체력과 일정에 맞춰 탐방 코스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가벼운 산책을 선호한다면 사찰 내부와 상생폭포 구간만을 부담 없이 다녀오는 왕복 1시간 코스가 적당하다.

반면 산의 비경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은 숙련된 탐방객이라면 보경사를 출발해 상생폭포, 소금강전망대, 은폭포를 거쳐 관음폭포와 연산폭포를 모두 선회하는 왕복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소요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현재 보경사는 주차 요금과 입장료를 전면 무료로 운영하고 있어 대중에게 문턱을 크게 낮췄다. 차량을 세우고 이동하는 주차장 경계에는 토속음식 단지가 성황리에 조성되어 있어, 산행 전후로 더더구이와 도토리묵, 신선한 산채나물에 시원한 동동주를 곁들이며 허기를 달래기에 좋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고찰의 미학과 눈부신 꽃의 개화, 그리고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뚫어주는 폭포 소리가 교차하는 6월, 자연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내연산의 품은 가장 완벽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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