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세 번 만난 사이”
가수 이미자와 딸 정재은
트로트계의 살아있는 전설 이미자는 1960~70년대를 주름잡았다.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여자의 일생’ 등 히트곡을 불렀으며 한국 여가수 최초로 10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가수로 자리매김을 했을지는 몰라도 ‘엄마’ 이미자로서는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한 그의 딸 정재은은 ‘엄마와 한 무대에 서보고 싶다’라는 소망을 내비치며 가슴 아픈 모녀 사이를 공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엔카 가수 정재은
그의 딸 정재은은 엄마의 재주를 이어 받았는지 만 7살 때부터 악극단에 소속되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1978년 MBC 국제가요제에서 ‘무지개 피는 곳에’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가수로서 빛을 보는가 싶었던 것도 잠시, 1986년 큰 빚을 남기고 일본으로 떠난 아버지로 인해 그는 모든 채무를 떠안고 거리에 내몰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서 활동하기 힘들어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갔고 당시 엔카 가수로 활약하던 김연자의 도움으로 일본 가요계 진출에 성공했다.
그는 일본 레코드대상 신인상, 오리콘 차트 엔카 부문 연속 1위, 3년 연속 일본 유선대상 유선음악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 가요계를 대표하는 한류가수로 이목을 끌었다.
인생에 딱 세 번 만난 모녀
일본에서 활약하는 그는 한국의 한 방송에서 안타까운 가족사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2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보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던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게 되고 큰 빚을 지며 그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쪽잠을 자거나 숙박소에 이미자의 딸이라고 말하고 잠동냥을 하며 근근이 살았다.
게다가 그는 평생 동안 엄마인 이미자를 딱 3번 만났다고 전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것도 7살이 됐을 때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고.
외할아버지가 그를 몰래 이미자의 집에 데려놔 엄마와 겨우 3일을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당시 이미자가 그에게 자신과 함께 살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어머니는 너무 많은 걸 가졌고 아버지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으니 아버지와 함께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헤어졌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김포공항에서 우연히 만났으나 인사 정도만 나눴을 뿐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마지막 만남은 그로부터 10년 후, 스포츠 센터에서 마주쳤지만 마찬가지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같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쫓아가 인사를 건넸지만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만 보았다”라고 전한 바 있다.
한편, 그는 1987년에 5살 연상과 결혼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정재은 씨 인생이 참 기구하네요. 응원합니다.”, “너무 화가 나네요. 이미자 씨 노랫말은 모정이 깊은데..”, “부부의 연은 끝나도 자식은 챙겨야지, 다시 만났으면 좋겠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