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도 연예인도 아니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수장이 앉았던 삼겹살집 테이블 앞에 줄이 섰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방한이 한국 사회에 전에 없던 풍경을 만들어냈다.
젠슨 황 CEO는 지난 6월 5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해 9일 출국하는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입국 직후 기자들에게 “한국에 몇 가지 깜짝 선물이 준비돼 있다”고 말하며 삼성·SK·LG 등과의 협력 일정을 예고했다.
삼겹살집 중앙 테이블이 ‘성지’가 되다
황 CEO가 6월 5일 재계 총수들과 만찬을 가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입구역 인근 삼겹살 전문점 ‘형님 저요’. 그가 출국한 9일 오후, 가게 문을 연 직후부터 손님들로 가득 찼다.
방문객들은 가게 간판을 배경으로 셀피를 찍거나, 지인에게 전화해 “젠슨 황이 다녀간 식당에 왔다”고 자랑했다. 황 CEO의 사인이 남겨진 중앙 테이블은 자리를 잡기 전 기념사진부터 찍는 명소가 됐다.
점주 이모(55) 씨는 “황 CEO가 방문한 뒤 손님이 많이 늘었다. 문을 열어두면 자꾸 들어오는 분들이 있어 평소에는 문도 못 열어둔다”고 말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잘 만큼 분주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황 CEO가 2차로 방문한 BBQ 홍대입구점은 한발 더 나아갔다. 매장 측은 사인과 사진을 붙인 해당 테이블을 아예 ‘젠슨 황 자리’라는 이름의 별도 예약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성지 마케팅의 상품화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취업·주식…’기운 소비’의 민낯
방문객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기운’이었다. 취업 준비 중인 하모(29) 씨는 “황 CEO의 좋은 기운을 받아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했고, BBQ를 찾은 30대 후반 고객은 “최근에 산 주식들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왔다”고 털어놨다.
과거 방한 때 황 CEO가 들렀던 깐부치킨까지 찾아갔다는 30대 방문객은 “고기도 맛있었지만, 좋은 기운을 얻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음식을 소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의 자취’를 소비하러 왔다는 고백이다.
이는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오염(positive contagion)’ 현상과 맞닿아 있다. 성공한 인물이 접촉한 사물·장소에 그 운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으로, 전통적 성지 순례와 구조가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 대상이 신이 아닌 ‘글로벌 AI 황제’라는 점이다.
한 유튜버(32)는 ‘젠슨 황의 발자취 따라가기’ 콘텐츠를 기획해 삼겹살집·PC방·BBQ를 연속 방문했다. “관심을 많이 받을 것 같다”는 그의 계산은 이 현상이 이미 2차 콘텐츠 경제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성지 효과’의 명암…모두가 누리진 않는다
그러나 황 CEO가 방문한 모든 장소가 동일한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크래프톤 장병규 대표 등과 자리를 함께한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PC방은 달랐다. 직원 신모(36) 씨는 “손님들이 황 CEO가 왔다 간 사실을 많이 이야기하긴 했지만, 손님이 크게 늘거나 붐비는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성지화의 조건이 있다는 방증이다. ‘사인 테이블’처럼 명확한 물리적 상징물, SNS 인증에 적합한 스토리, 그리고 업주의 적극적인 마케팅이 결합될 때만 ‘기운 소비’의 폭발이 일어났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깜짝 회동한 서울 중구 평양냉면 전문점 우래옥은 또 다른 풍경이었다. 여름 성수기 기준 오픈 10분 전부터 대기 손님이 100명을 넘는 이곳은 원래부터 초인기 맛집이었다. 단골 이고은(27) 씨는 “앞으로 웨이팅이 더 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성지 효과가 기존 단골의 이용권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엔비디아는 현재 글로벌 주식시장 시총 최상위권 기업으로, 황 CEO의 발언 하나가 국내 증시의 변수로 다뤄질 만큼 그의 상징성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인 하나에 취업과 주식 상승을 기원하며 줄을 서는 풍경은, AI 시대가 낳은 새로운 불안과 그 불안을 달래는 한국 특유의 방식을 동시에 드러낸다. 홍대 삼겹살집의 중앙 테이블은 이제 그 모든 것의 상징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