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거짓말할 리 없잖아요” … 고령층 노리는 섬뜩한 ‘함정’에 ‘날벼락’

영상통화 속 ‘가짜 경찰’에 속은 순간
울산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 등장
노년층 피해 급증, 금융 교육 시급

영상통화 화면에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책상 뒤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누구라도 실제 경찰서라고 믿을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치밀하게 꾸며진 가짜였다.

울산의 한 70대 여성이 이 영상통화에 속아 1억원을 잃을 뻔했다. 경찰은 최근 이처럼 영상통화를 이용해 신분을 속이는 신종 보이스피싱이 확산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영상통화로 신분 위장…정교한 ‘가짜 수사팀’

울산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5일, 울산 중구에 사는 70대 여성 A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은행원을 사칭하며 “고객님의 통장에서 돈이 인출되려 한다”고 말했다.

놀란 A씨가 “그럴 리 없다”고 답하자 상대는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과 연결해주겠다”고 말했다. 잠시 후 걸려온 영상통화에는 경찰관 복장을 한 남성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실제 경찰서처럼 꾸며진 사무실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앉아 있었다. 사칭범은 “휴대전화에 악성 앱이 깔렸을 가능성이 있다”며 “제거 앱을 설치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A씨는 그 말을 믿고 앱을 깔았지만, 그것은 사실상 ‘원격제어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인물이 전화를 걸어 “무죄를 입증하려면 금융자산을 금으로 바꿔 조사받아야 한다”고 속였다.

A씨는 적금 1억원을 해지하려 은행을 찾았지만, 이상함을 눈치챈 은행원의 신고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은 조직이 A씨로부터 금괴를 건네받을 계획이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영상통화로 신분 확인 안 해”

울산 경찰에 따르면 10월 들어 A씨 사례를 포함해 유사한 신고가 최소 3건 접수됐다. 범인들은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임의로 비밀번호를 걸어 경찰 수사를 지연시키는 등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용승진 울산북부서 경사는 “은행에서 ‘누가 내 돈을 빼내려 한다’는 전화를 받으면 절대 믿지 말고 직접 은행 창구를 방문해야 한다”며 “경찰이나 검사는 영상통화로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30대 여성 B씨 역시 검찰 사무관을 사칭한 전화를 받고 이틀 동안 호텔에 ‘셀프 감금’돼 있었다.

하지만 마침 듣게 된 라디오 생방송에서 울산경찰청 강력계 경찰관이 “법원 등기 배송 전화를 이용한 감금 수법이 있다”고 경고하는 말을 들은 덕분에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

노년층 피해 5년 새 두 배로 급증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사회적 취약계층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5년 상반기 기준 60대 이상 피해자는 전체 1만6765명 중 5131명(30.6%)으로, 2020년(16%)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다소 줄었지만, 고령층 피해 비율은 해마다 상승해왔다. 피해액 역시 2023년 4472억원에서 2025년 8월 기준 8856억원으로 늘었다.

남 의원은 “보이스피싱은 어르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며 “정부가 금융교육과 예방 캠페인을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