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게 누구야”.. 그 시절 최고의 청춘 스타였던 비운의 여배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청춘스타
그 시절 그녀의 압도적인 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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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용원 (온라인 커뮤니티)

1980년대, 문화의 황금기 속에서 ‘중앙대 3대 미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던 조용원은 소피 마르소를 연상시키는 청순한 외모로 당시 많은 이들의 이상형이었다.

1981년, 열다섯의 나이에 ‘미스 롯데’로 당선되어 연예계에 발을 들인 조용원은 순수하고 청초한 이미지로 곧바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TV와 CF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사랑스러운 매력은 곧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조용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청순하고 가녀린 이미지로 주목받았다.

영화계로의 화려한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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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용원 (온라인 커뮤니티)

1984년, 하명중 감독의 ‘땡볕’을 통해 조용원은 하이틴 스타들과는 차별화된 연기력을 선보이며 자신의 연기 범위를 확장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순진한 아낙네 ‘순이’ 역할을 맡은 그녀는 고등학생의 연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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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용원 (온라인 커뮤니티)

이 연기는 그녀에게 대종상, 영화평론가협회상,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신인상 등 다양한 영화상을 안겨주었으며,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는 등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다.

1980년대, 조용원은 조디 포스터와 브룩 쉴즈 같은 해외 명문대 출신 배우들과 비교되며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또한 그녀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수석으로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비운의 사고와 예술적 무대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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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용원 (온라인 커뮤니티)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조용원은 1987년, 스물 한 살의 젊은 나이에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그 사고는 그녀에게 목소리 결절을 초래했으며, 여배우로서 치명적일 수 있는 얼굴에도 상처를 남겼다.

사고 이후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조용원은 은밀하게 연기 생활을 접고 학문의 길을 택한 그녀는 중앙대 영화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이어 동경대학교에서 박사과정까지 이수한다.

사고와 상처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성과를 이루며 새로운 삶을 개척한 조용원은 많은 이들에게 극복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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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용원 (온라인 커뮤니티)

그녀의 삶은 비록 연예계를 떠났지만, 굴곡진 인생 경험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인간적,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996년 영화 ‘정글 스토리’로 복귀한 조용원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이전처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아, 뮤지컬 제작자로 활동하며 자신의 연극단도 창립하여 연극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과거 SBS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을 통해 조용원의 근황이 알려진, 그녀는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로 방송 등 외부 노출을 원하지 않는 상태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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