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연기가 돋보였던 최고 아역 스타 최유리
오보로 모든 것을 잃었던 그의 근황
70년대 대국민적인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아역스타가 있다. 그는 최유리로, 아이답지 않은 눈물 연기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사랑과 함께 따라오는 부와 명예를 쌓던 그는 어느 순간 모든 걸 잃고 사라져버린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대 최고 아역스타 최유리
최유리는 1968년 5살 때 mbc 어린이 합창단 1기 생으로 활동하며 얼굴을 알리고 그 후 자연스럽게 아역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합창단은 7살 이상만 참여할 수 있는 나이 조건이 있었지만, 나이를 속인 어머니 덕에 합격을 했다.
그는 mbc 드라마 ‘학부인’에서 죽어가는 어린 소녀 역할을 맡으며 아역 배우로 얼굴을 알렸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 연기인 눈물 연기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촬영 스텝들에 의하면 그는 ‘큐’하면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대본을 한 번만 읽어도 바로 기억해 천재 아역배우라고 불렸다.
그 후 드라마 ‘여로’에서 연기력을 뽐내며 수많은 광고 모델에 발탁돼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1976년에 방송된 어린이 프로그램 ‘호돌이와 토순이’를 4년간 진행하며 mc로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알고 보니 소녀 가장
많은 사랑으로 겉 보기엔 화려한 생활을 했을 것 같은 그가 어린 나이부터 연예계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는 소녀 가장이었는데. 아버지가 사업을 실패하며 가족의 생계를 지게 돼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가장 노릇을 하게 된 그는 돌연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의 치열한 방송 생활을 피해 떠나왔지만, 미국 생활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호텔 청소, 영화관 팝콘 장사, 자동차 모델 등 생계를 위해 여전히 몸은 힘들었지만 한국에서 모두가 알아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마음만은 편했다고 한다.
미국 생활에 슬슬 정착하던 1986년, 그는 또다시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귀국했다.
5년 만의 복귀에도 그는 mc로 활약을 하며 공백기가 언제였다는 듯 활동했다. 특히 미국 살이를 통해 쌓은 영어 실력으로 해외 리포터로도 활동했다.
다시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차에 그는 갑작스러운 사건에 휘말린다. 그는 유학원 모델 활동을 하며 명목상 이사장 위치에 있었는데, 이 유학원이 문제가 돼 1991년에 불법 유학과 100억 원 횡령 혐의로 사회면을 장식하게 된다.
순수한 아역 스타가 성인이 되어 사기를 쳤다는 충격적인 뉴스는 그의 인기에 큰 타격을 줬다. 그는 모든 방송 출연과 광고 계약이 취소되면서 위약금을 위해 살던 집까지 팔았다고.
그는 1992년에 이사장이라는 직함과 상관없이 홍보 모델만 했을 뿐 사기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는 스쳐 지나가는 뉴스로 끝났다.
작가 최유리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기를 친 아역스타로 기억된 채 자취를 감췄던 그는 2018년 에세이를 발간하며 작가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30년 만에 나타난 그는 ’60년대부터 90년대 중반에 걸친 그때 그 시절을 이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시절 고통을 겪었던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편, 현재는 미국에서 결혼해 남편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와 얼굴 보니까 생각나요! 반갑네요 추억이 새록새록”, “처음에 엄마가 나이 속이고 데뷔 시킨 것부터 수상했음”, “고생했겠지만 지금은 잘 살고 있는 거 같아 다행이네요”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