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 정액 과징금 법정 최고액인 5억 원을 부과했다. 그런데 이 ‘최고액’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현행 제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반 행위의 중대성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더 높은 금액을 부과할 수단이 없었다는 사실이, 과징금 상한 인상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공정위는 9일 쿠팡이 2020년 8월 26일부터 2022년 5월 15일까지 약 1년 8개월간 일회성 쿠폰 적용 가격을 마치 와우 멤버십 가입 시 상시 누릴 수 있는 ‘와우회원가’인 것처럼 광고한 행위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5억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표시광고법상 기만적인 표시·광고 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A/B 테스트로 ‘더 잘 속이는 안’ 골랐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쿠팡이 단순 실수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전략적 선택으로 기만 광고를 설계했다는 점이다. 쿠팡은 2020년 7월 약 한 달간 광고 효과 A/B 테스트를 진행했다.
A안은 ‘와우회원가’를 와우 회원에게 상시 적용되는 가격으로만 표시했고, B안은 일회성 쿠폰 할인까지 반영한 더 낮은 가격을 ‘와우회원가’로 표시했다. 쿠팡은 두 안의 구매 전환율 등을 비교·평가한 끝에 B안을 채택했고, 2020년 8월 26일부터 본격 적용했다. 공정위는 이 기록이 락인 효과를 노린 의도적 기획의 증거라고 봤다.

450만 명 늘었다…숫자로 본 ‘락인’의 위력
기만 광고가 시행된 기간 동안 와우멤버십 회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0년 8월 483만 명이었던 회원 수는 2022년 5월 937만 명으로, 450만 명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쿠폰 할인이 시행된 횟수는 약 230만 회에 달한다.
공정위는 이 수치를 해당 광고의 효과이자 락인 전략의 성과로 해석했다. 2020년 당시 온라인 쇼핑몰 시장 점유율은 네이버 18.6%, 쿠팡 13.7%, 이베이 12.4%, 11번가 6.2% 순으로 경쟁이 치열했다. 유료 멤버십 시장이 급성장하던 시기에 초기 회원 확보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방증한다.
실제 ‘와우회원가’의 구조는 소비자가 인식한 것과 달랐다. 멤버십 가입 시 발급되는 1회용 쿠폰이 적용된 가격이었고, 동일 상품을 반복 구매할 경우 쿠폰이 소진된 뒤에는 일반 판매가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쿠팡은 ‘와우회원가로 0,000원 할인’, ‘로켓와우로 할인받기’, ‘회원전용 특가’ 등의 문구로 상시 별도 가격 체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광고했지만, 정작 일회성 쿠폰이라는 핵심 정보는 주된 광고 페이지에 명확히 표시하지 않았다.
5억이 ‘최고액’…제도의 역설이 개정 논의 불렀다

공정위는 이번 위반 행위의 위법성이 ‘매우 중대’하다고 판단했음에도, 부과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은 5억 원에 묶여 있었다. 현행 표시광고법상 정액 과징금 상한이 5억 원이기 때문이다. 공정위 이영희 표시광고감시팀장은 “이번 조치는 온라인 쇼핑몰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와 연계된 가격 할인 혜택 광고를 제재한 첫 사례”라며 “유료 멤버십 서비스의 할인 적용 조건과 범위를 소비자가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한다고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정위는 표시광고법 개정 추진을 공식화했다. 정률 과징금 상한을 현행 2%에서 10%로, 정액 과징금 상한은 5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각각 10배 높이는 방안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