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연료 가격이 내려가면 전기요금도 내려가야 하는데, 현실은 달랐다. 한국전력은 오는 7월부터 적용되는 3분기(7~9월) 연료비 조정단가를 현재와 동일한 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22일 공식 밝혔다. 이로써 3분기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 요금, 기후환경요금 등 전 항목에 걸쳐 전면 동결된다.
핵심은 ‘원칙’과 ‘현실’의 충돌이다. 최근 3개월간 유연탄·액화천연가스(LNG) 가격 변동을 반영한 산식 결과,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는 kWh당 -3.4원으로 산정됐다. 그러나 정부는 한전의 재무 상황과 누적 ‘미조정액’을 이유로 법정 상한인 +5원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산식상 단가와 실제 적용 단가 간 격차는 kWh당 8.4원에 달한다.
이번 동결로 4인 가구(월 350kWh 사용 기준) 기준 월 2,000~3,000원 수준의 인하 여지가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을 앞두고,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요금 경감 기회를 잃게 된 셈이다.
2022년 3분기부터 17개 분기 연속 ‘상한 고정’
연료비 조정요금은 단기 에너지 가격 변동을 전기요금에 자동으로 반영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로, 분기마다 kWh당 ±5원 범위에서 조정된다. 그러나 이 조정단가는 2022년 3분기 이후 17개 분기 연속으로 상한인 +5원에 고정돼 있다.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은 “산식상 마이너스 단가가 나왔음에도 플러스 상한을 유지하는 것은 연료비 연동제의 자동 조정 원칙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요금 인상 국면에서는 국제 연료가격 상승을 근거로 빠르게 올리면서, 인하 요인이 생기면 재무 상황을 이유로 동결하는 ‘일방향 작동’ 구조라는 지적이다.
206조 부채에 하루 120억 이자…한전 재무의 민낯
동결 결정의 배경에는 한전의 심각한 재무 상태가 자리한다. 2025년 6월 말 기준 한전의 연결 기준 총부채는 206조 2,000억원에 달한다. 2025년 1~3분기 동안 이자 비용으로만 총 3조 2,794억원, 하루 평균 약 120억원을 지출한 구조다.
여기에 그간 연료비 조정 산식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해 쌓인 ‘미조정액’이 수조원 규모에 이른다는 점도 동결 논거로 작용했다. 정부는 이번 결정을 통보하면서 한전에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노력을 철저히 이행하라”고 공식 주문했다.
요금체계 개편 목소리 커지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행 ±5원 상·하한 구조 자체가 연료가격 급등·급락 국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진단이 확산되고 있다. 상·하한 폭 확대, 미조정액 처리 방식 개선, 계절별·계시별 요금제 확대 등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이어진다.
일부 에너지 전문가들은 한전의 재무 위기가 지속될 경우 신재생 에너지 투자와 전력망 보강 등 장기 인프라 투자에도 제약이 생겨 에너지 전환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