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핵심 정책 사령탑이 반도체 호황에 따른 ‘역대급 세수 잭팟’을 공개적으로 예고하면서, 재정 정책의 기조 전환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향후 2년간 초과 세수가 역대 최대 규모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그간 보수적으로 운영되던 정부 곳간을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반도체 낙수효과, 재정 지형을 바꾼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반도체 산업의 속도가 기존 GDP 통계 체계가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현실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법인세에 더해, 고소득 반도체 인력의 소득세와 무역흑자 확대에 따른 부가가치세 증대 효과가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호황의 재정 낙수효과는 구조적이다. 반도체 가격이 10% 상승할 때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이에 따른 법인세 증분은 조 단위에 달한다.
여기에 수만 명에 달하는 반도체 엔지니어의 성과급에서 발생하는 소득세, 무역흑자로 인한 국내 소비 활성화에 따른 부가가치세까지 더해지면 세수 증가 폭은 더욱 가팔라진다는 분석이다.
‘2021년 60조’ 재현…이번엔 규모가 다르다
시장에서는 이번 반도체 사이클의 파급력을 2021년 사례와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2021년 반도체 수출 호조 당시 정부는 당초 예상보다 약 60조 원에 가까운 초과 세수를 거둬들였으며, 이는 재정 운용의 폭을 대폭 확대한 계기가 됐다.
김 실장은 이번 사이클의 규모가 코로나 직후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경고하며, 과거의 보수적 세입 추계 방식을 유지할 경우 정책 대응의 오차가 커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AI 반도체 수요 급증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과거와는 다른 지속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꼽힌다.
추경·민생지원금, 하반기 세입 전망이 분기점
재정 확대의 현실화 여부를 가를 첫 번째 분기점은 하반기에 발표될 2026년 수정 세입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이 시점에서 세수 전망치를 대폭 상향 조정한다면, 2027년 예산 총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통한 민생지원금 지급이다. 실제로 2025년 소비쿠폰 사업에서는 1,000원 지급당 433원의 소상공인 매출 증대 효과가 확인됐으며, 이는 통상적인 현금성 재정 지출 효과인 0~300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AI 반도체 전력망 구축이나 산업단지 인프라 투자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입 가능성도 함께 거론된다.
다만 반도체 가격의 높은 변동성은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된다. 2022년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던 사례처럼, 현재의 초과 세수 기반이 무너질 경우 확장된 재정 지출이 오히려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시장 일각에서는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