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대 규모 기업공개(IPO)를 마친 지 불과 열흘 만이었다. 일론 머스크의 항공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이번엔 채권시장 문을 두드렸다. 규모만 최소 200억 달러(약 30조7,000억 원), 만기는 5년물부터 30년물까지다. 이번 딜은 단순 자금 조달이 아닌, 머스크 계열사 전체를 관통하는 ‘레버리지 제국 건설’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 통신은 22일(현지시간) 스페이스X가 투자자들과 전화 회의를 갖고 첫 회사채 발행 계획을 공식화했다고 보도했다. 이미 IPO로 857억 달러를 조달하고 현금 보유고만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스페이스X가 다시 채권시장에 나선 배경에 시장의 시선이 쏠린다.
X·xAI 부채, 스페이스X가 떠안다
이번 회사채 발행의 직접적인 원인은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이스X는 당시 엑스(X·옛 트위터)와 xAI의 부채를 승계하는 과정에서 6개월 만기 200억 달러 규모의 브릿지론(단기 차입금)을 일으켰다. 단기 고금리 성격의 브릿지론 특성상, 6개월 안에 전액 상환해야 하는 구조였다.
이번 회사채 발행은 이 단기 부채를 5~30년 만기 장기채로 갈아타는 전형적인 리파이낸싱이다. 국내 리서치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고금리·단기 브릿지론을 제거해 이자 부담을 낮추고, 스타십·스타링크 등 대형 프로젝트 추진 기반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풀이한다.
50파크 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CEO) 애덤 사한은 “스페이스X가 추가 주식 발행 대신 회사채를 택한 것은 주주가치 희석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머스크의 다른 계열사(X·xAI) 부채를 스페이스X로 이전한 뒤 스페이스X 명의로 장기채를 발행하는 방식이, 스페이스X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관련 당사자 거래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I 열풍이 채권 수요 당긴다
회사채 발행이 성사될 수 있는 배경에는 ‘AI 열풍’이 자리한다. 투자등급 수준으로 평가받는 스페이스X 회사채는, AI 인프라와 우주산업을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크레딧 상품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페이스X는 AI 인프라 데이터센터 ‘콜로서스2’를 구축 중이며, 앤트로픽과 구글 등에 이미 컴퓨팅 파워를 공급해 왔다. 같은 날 CNBC 보도에 따르면 오픈소스 AI 스타트업 리플렉션AI와 월 1억5,000만 달러, 2029년까지 총 63억 달러 규모의 컴퓨팅 파워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2031년 순부채 4,000억 달러…오라클의 3배
시장이 주목하는 또 다른 수치가 있다. 오펜하이머의 티모시 호란 애널리스트팀은 스페이스X의 순부채가 2031년까지 4,0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오라클 부채 규모의 약 3배에 해당하는 숫자다.
한편 회사채 발행 소식이 전해지자 스페이스X 주가는 16.43% 급락했다. 글로벌 금리 환경이 재상승하거나 AI 인프라 수익화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급격히 늘어나는 부채가 기업가치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시장의 경계감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