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금까지 걷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의 사연
1972년 연극배우로 시작한 이덕화는 같은 해 TBC 동양방송 공채 13기 탤런트로 데뷔하며 연기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배우 임예진과 함께 출연한 영화 ‘진짜진짜 잊지마'(1976)로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1970년대의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진짜진짜 미안해'(1976)로도 연속 흥행에 성공하며, 명실공히 당시 젊은 세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덕화는 당시를 회상하며 “문여송 감독님 덕분에 ‘진짜진짜’ 시리즈를 찍게 되었고, 영화가 개봉하면 교복 입은 학생들이 극장에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영화의 성공으로 그는 단숨에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그 영광 뒤에는 그를 기다리고 있던 치명적인 위기가 있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사연
1970년대 후반, 그는 청바지와 빨간 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삶을 즐겼다. 그러나 인기의 정점에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겪었다.
1977년,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그는 만원 버스와 충돌하며 몸이 70m를 끌려가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었다.
이덕화는 방송에서 “청바지는 허리띠만 남고, 가죽 점퍼는 목만 남았다. 버스 밑에서 기어나오던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며 당시의 참혹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이 사고로 무려 53번의 수술을 받았고, 10개월 동안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갔다. 담당 의사조차 “10번째 수술까지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에 동료 배우들은 그의 죽음을 예상하고 조의금을 걷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고 이후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았지만, 끝없는 투병과 재활 끝에 3년 만에 기적적으로 회복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나를 살린 건 바로…
이덕화의 기적 같은 회복 뒤에는 지금의 아내 김보옥 씨의 헌신적인 간호가 있었다. 사고 당시 두 사람은 결혼은커녕 약혼조차 하지 않은 사이였다. 그럼에도 김보옥 씨는 이덕화의 곁을 지키며 그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재활을 돕는 등 3년간 모든 정성을 다해 돌봤다.
이덕화는 한 방송에서 “아내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며 “내 이름으로 된 건 아무것도 없고 모든 재산과 권한은 아내에게 있다. 낚시 미끼 값 정도만 부탁한다. 이것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이다”라고 말해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이어 “그 시절 의사, 간호사, 그리고 내 아내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흰 가운 입은 분들을 보면 늘 마음으로 존경한다”고 전했다.
이덕화는 후배들에게 “잘나갈 때 절대 까불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고 전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인기 절정의 시기를 만끽했지만, 사고 이후 그는 인생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한 방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삶의 깊이를 담고 있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예견했던 그 순간, 이덕화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고통과 재활을 넘어 다시 대중 앞에 선 그는 단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남긴 메시지는 단순히 개인의 생존 이야기를 넘어 삶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