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개월 연속 사용해 온 ‘경기 하방 위험’이라는 표현을 공식 보고서에서 전격 삭제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고였다.
재정경제부는 12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6월호에서 “수출 호조, 소비·기업심리 개선 등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중동 전쟁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물가 상승, 고용 둔화 등 민생 부담 우려가 있다”고 명시했다.
수출과 소비 심리는 살아나고 있지만, 국민이 직접 체감하는 물가와 고용에서는 중동 전쟁의 충격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이중 진단이다.
석유류 24.2% 급등…물가·고용 동시 악화
민생 지표의 악화는 수치로 뚜렷하게 확인된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하며 전월(2.6%)보다 오름폭이 확대됐다. 중동 전쟁의 영향을 직접 받는 석유류 물가는 같은 기간 24.2% 급등했다.
일시적 요인을 제외한 근원물가(식료품·에너지 제외) 역시 2.5%로 전월(2.2%)보다 높아졌다. 근원물가까지 오름세가 확대됐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에너지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후행 지표인 고용도 급격히 꺾였다. 5월 취업자 수는 2,916만 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4만 명 감소했다.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은 2024년 12월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정부가 그린북에서 ‘고용 둔화’라는 표현을 다시 꺼낸 것도 작년 비상계엄 여파가 있던 1월호 이후 처음이다.

환율 1,500원대…’수입물가 상승’ 경로 현실화
고유가에 원화 약세까지 겹치며 물가 압력의 구조적 경로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머무는 상황에서 재경부 관계자는 “이론적으로 수입물가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환율 1,500원대는 한국 경제사에서 외환위기(1997~9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09년) 등 극단적 위기 국면과 겹치는 수준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가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이것이 다시 소비자물가로 전가되는 ‘2차 충격’ 경로를 주목한다.
재경부 관계자는 환율 급등 원인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리밸런싱·차익 실현에 투기성 움직임이 가세해 쏠림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환율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거시 지표의 희비는 선명하게 엇갈린다. 5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3.2% 급증했으며, 반도체(+169.4%)와 컴퓨터(+290.7%)가 성장을 이끌었다.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전월보다 6.9포인트 오른 106.1로 기준선 100을 웃돌았고, 백화점 카드 승인액도 17.1% 늘었다.
반면 4월 전산업 생산(-0.6%), 설비투자(-3.6%), 소매판매(-3.6%)는 세 지표가 동시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