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부가 공개한 30년 전 외교문서에서 한국 정부가 직면했던 외교적 딜레마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울 강남의 상징 ‘테헤란로’가 1995년 ‘무역의 거리’로 개명될 뻔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무역협회와 강남 상인들은 “무역·금융 중심지에 외국 도시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명칭 변경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의 즉각적인 반발 앞에서 한국 정부는 단 한 달 만에 ‘개명 불가’ 입장을 굳혔다.
이 사건은 외교적 명분과 경제적 실리 사이에서 정부가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1995년 12월 15일 주한 이란대사가 이홍구 국무총리를 찾아 우려를 전달하자, 외무부는 즉시 서울시에 명칭 유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당시 이란은 한국 원유 수입의 14.4%를 담당하는 제2공급국이었고, 양국 교역 규모는 15억 달러에 달했다. 에너지 안보가 걸린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역 브랜드화 vs 외교 상징, 1995년의 충돌

테헤란로 개명 논의는 1995년 11월 ‘수출 1000억 달러 달성’ 기념행사를 앞두고 본격화됐다.
코엑스를 중심으로 한 무역 거리의 브랜드화를 추진하던 무역협회는 강남 한복판에 이란 수도 이름이 붙어있다는 점에 대한 정서적 이질감을 제기했다.
1990년대 중반 강남은 이미 무역센터, 포스코센터 등 고층 빌딩이 들어서며 한국 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았고, 정보통신 기업과 벤처가 몰리며 ‘테헤란 밸리’로 불리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란 외교 당국은 “테헤란로와 서울로는 1977년 양국 합의로 만들어진 상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1977년 6월 27일 구자춘 서울시장과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이 자매결연을 맺으며 도로명을 교환한 것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한-이란 협력 강화의 상징이었다.
당시 한국은 안정적 원유 확보가 절실했고, 이란은 인프라 건설을 위해 한국 기업과 노동력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15억 달러와 14.4%, 정부의 외교 셈법

외무부는 서울시에 테헤란로 명칭 유지를 요청하는 동시에, 이란 측에는 “실제 개명 추진이 아닌 행사 성격의 논의”라며 오해 해소에 나섰다.
서울시 역시 “공식적으로 도로명 변경 청원이 접수된 사실이 없다”고 즉각 해명했다. 외교문서에는 당시 정부가 사안을 얼마나 민감하게 다뤘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배경에는 명확한 경제적 계산이 있었다. 1995년 기준 이란은 한국 원유 수입의 14.4%를 공급하는 제2공급국이었다. 양국 교역 규모 15억 달러는 중동 지역에서 한국의 핵심 경제 파트너임을 의미했다.
에너지 안보와 중동 건설 시장 진출이라는 두 가지 국익 앞에서, 도로명 하나로 외교 갈등을 키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당시 정부가 단 한 달 만에 사태를 정리한 것은 외교적 위기관리가 신속하게 작동한 사례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