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이 문장은 소설 속 악당의 대사가 아니다. 올해 3월 4일, 국내 4대 정유사 중 한 곳의 가격결정부서 내부 대화방에서 직원들이 실제로 주고받은 말이다.
같은 날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미국·이란 전쟁 여파를 타고 리터(ℓ)당 1,800원을 돌파했다. 주유소마다 기름을 미리 넣으려는 차량들이 긴 줄을 이뤘다.
서울중앙지검 공조부는 7월 6일,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4대 정유사 법인과 관계 임직원을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가격 담합) 및 불공정거래행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원유 비축해놓고 가격 폭등”…검찰이 밝힌 담합의 실체
검찰에 따르면 담합은 전쟁이 터지기 훨씬 전인 2024년 7월부터 시작됐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가격결정 부서가 석유제품 가격 정보를 상호 교환하며 입금가를 맞춰온 것이 수사로 드러났다.
검찰이 파악한 두 회사의 직접 담합 규모만 14조 2천억 원에 달한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앞선 두 회사의 담합 가격을 그대로 참고해 뒤따라 인상한 효과까지 합산하면, 총 담합 효과는 26조 원 상당으로 추산된다.
검찰은 전쟁 발발 당시 4대 정유사가 상당량의 원유를 이미 비축해 둔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즉각적인 원가 급등 요인이 없었음에도 입금가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폭등시켰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정유사들이 국제 유가 불안을 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활용했다는 시각이다.
98% 전량구매계약…”정유사가 왕 같은 구조”
담합과 함께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은 ‘전량구매계약’이라는 불공정 유통 구조다. 현재 4대 정유사의 전량구매계약 체결 비중은 평균 98%에 달한다. 영세 자영주유소들은 특정 정유사로부터 모든 물량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구조에 묶여 있다.
한국주유소협회 설문에서 자영주유소 83.3%가 “실질적인 계약 선택권이 없었다”고 답했다. 전량구매 의무를 위반한 주유소에는 보너스 카드 중단 등 혜택 박탈은 물론, 매출액의 10~30%에 달하는 위약금 소송이 제기됐다.
정유사 내부 이메일과 메신저에서는 “악성 거래처는 소송을 통해 골탕을 먹여야 한다”, “전량 계약이라 다른 곳으로 가는 순간 손해배상 아작난다”는 표현까지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2009년 시정명령을 내렸고, 2013년 대법원도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전량구매계약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동일한 구조가 유지된 것이다.
검찰은 정유 4사 간 석유제품의 실질적 품질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유사들이 서로 저장 탱크를 교환하는 ‘스와프(SWAP) 거래’를 통해 제품을 주고받는 이상, 품질 차이를 이유로 한 가격 차별화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결국 가격만이 유일한 경쟁 수단이었는데, 담합이 이마저 없앴다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