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18일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하며 한국 자본시장의 새 역사를 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적 통화정책 신호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란 간 종전 합의 기대와 반도체 업종 급등이 지수를 끌어올린 결과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199.60포인트(2.25%) 오른 9,063.84로 장을 마감했다. 오후 12시 52분께 장중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한 뒤 한때 9,106.07까지 치솟았으며, 장 마감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은 7,413조 2,473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15일 역대 처음 장중 8,000선을 돌파한 지 불과 34일, 거래일 기준으로는 22거래일 만에 이룬 성과다.
34일마다 1,000포인트…가속화된 ‘마디 지수’ 랠리
코스피의 1,000포인트 단위 마디 지수 돌파 속도는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빨라졌다. 3,000에서 4,000까지는 129일, 4,000에서 5,000까지는 87일이 걸렸으나, 올해 1월 22일 5,000을 처음 넘은 이후 속도가 크게 붙었다.
5,000에서 6,000까지는 34일이 소요됐고, 3월 이란 전쟁 여파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조정을 받으며 6,000에서 7,000에는 70일이 걸렸다. 그러나 7,000에서 8,000까지는 불과 9일, 이후 이날 9,000 돌파까지 다시 34일이 걸렸다.
유진투자증권은 코스피가 최대 10,400까지, KB증권은 10,5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JP모건과 모건스탠리도 강세 시나리오에서 10,000 달성이 가능하다고 봤다.
이란 종전 MOU·HBM4E 샘플…두 개의 불쏘시개
이날 장세를 이끈 핵심 변수는 두 가지다. 먼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증시 마감 후 이란과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한국시간 새벽에 전해졌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종전 MOU 서명으로 국제유가는 약세를 지속했고, 이는 위험자산 선호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대형 반도체·IT 업종으로 수급이 집중되며 쏠림 현상이 재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차세대 AI 메모리인 7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HBM4E’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했다고 밝히며 반도체주 매수세에 불을 붙였다. SK하이닉스는 이날 6.51% 급등해 장중 사상 처음으로 270만원을 돌파했고, 삼성전자도 4.62% 오르며 36만원대를 회복했다.
반면 전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하면서도 연내 1회 이상 인상을 예상한 위원이 9명에 달해 매파적 기조를 확인했다. 이에 미국 2년물 국채 수익률은 0.17%포인트 급등해 4.21%를 기록했고, 10년물도 4.499%까지 올라 심리적 저항선 4.5%에 바짝 다가섰다. 마이크로소프트(-3.80%), 메타(-5.44%) 등 빅테크주가 일제히 내리며 뉴욕증시 3대 지수는 하락했다.
‘불장’ 이면의 그늘…하락 종목이 상승의 7배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시장 내부는 극단적인 양극화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상승 종목은 109개에 그친 반면 하락 종목은 791개로 상승 종목의 약 7배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4.63%), 보험(+3.37%)이 강세를 보인 반면, 금속(-5.07%), 건설(-4.99%), 화학(-4.70%)은 급락했다. 현대차(-2.75%), 기아(-4.51%), LG에너지솔루션(-3.85%) 등 비반도체 대형주도 일제히 내렸다.
코스닥 시장은 더 가혹했다. 코스닥지수는 전장 대비 31.03포인트(3.01%) 내린 1,000.93으로 장을 마쳤으며, 장중에는 996.93까지 밀려 ‘천스닥(1,0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금리 인상 우려가 커지면서 신약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제약·바이오주의 자금 조달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코스닥 하락을 이끌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253억원, 2,646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개인이 3,924억원 매수 우위를 보이며 이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한국은행 신현송 총재는 전날 “에너지 공급망이 중동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하고 국제유가가 안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물가 흐름을 면밀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증권 전문가들은 종전 이후에도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추가 불확실성 요인으로 꼽는다. 이날 한국형 공포지수인 코스피200변동성지수(VKOSPI)가 0.75% 오른 80.25로 마감해 과열 신호를 함께 내보내고 있다는 점도 시장에서는 주목할 변수로 지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