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만 보면 ‘기록의 향연’이다. 한국은행이 6월 5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올해 4월 경상수지는 282억9천만달러(약 43조3,7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두 번째 규모이며, 36개월 연속 흑자라는 2000년대 이후 두 번째로 긴 기록도 이어갔다.
올해 1~4월 누적 흑자는 1,026억7천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240억달러)의 4.3배에 달한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숫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반도체 한 품목에 대한 의존도와 구조적 적자 항목이라는 ‘두 얼굴’이 동시에 드러난다.
반도체·컴퓨터, 수출 폭증을 이끌다
4월 상품수지 흑자는 338억8천만달러로, 전월(356억8천만달러)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수출 규모는 905억9천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54.5% 증가했으며, 이 역시 3월(949억달러)에 이어 역대 2위 수준이다.
품목별 증가율을 보면 편중의 실상이 더욱 선명해진다. 컴퓨터 주변기기가 411.3%, 반도체가 171.4% 급증하며 전체 수출 증가세를 주도했다. 석유제품(+39.4%)과 화공품(+10.7%) 등 비(非) IT 품목도 가세했지만, 전체 성장의 무게중심은 IT 분야에 집중됐다.
지역별로는 동남아(+74.2%), 중국(+62.6%), 미국(+54.0%), 일본(+28.4%) 등 주요 교역국에서 동시다발적 호조가 나타났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AI·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른 글로벌 IT 수요 회복이 한국의 수출 사이클과 맞물렸다”고 분석한다. 반면 중동 수출은 24.9% 감소해 지역 간 온도 차도 존재했다.
서비스·배당은 ‘만성 적자’…구조적 한계 노출
상품수지가 치솟는 사이, 서비스수지는 24억2천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3월(-13억1천만달러)보다 적자 폭이 확대된 수치다. 여행수지는 3월에 11년 4개월 만에 흑자(1억4천만달러)로 전환됐다가 4월엔 3천만달러 적자로 재반전됐다. 다만 3·4월 모두 입국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서며 과거 대비 구조적 개선세는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본원소득수지는 3월 35억9천만달러 흑자에서 4월 25억3천만달러 적자로 급반전됐다. 배당소득수지가 27억1천만달러 흑자에서 30억2천만달러 적자로 뒤집혔는데, 계절적 배당 집중 시기와 주요 기업의 배당 성향 상승이 겹친 결과다. 한국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의 상당 부분이 해외 투자자에게 배당으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WGBI 편입 효과, 채권시장에서 가시화
금융계정 측면에서는 외국인 투자 흐름의 급격한 변동이 눈에 띈다. 3월에 역대 최대 규모인 293억3천만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했던 외국인 국내 주식투자는 4월에 12억4천만달러 순유출로 규모가 대폭 줄었다. 중동 지역 지정학적 긴장 완화와 국내 반도체 기업의 양호한 실적 발표가 투자 심리를 개선시킨 결과다.
채권시장에서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외국인의 국내 부채성 증권 투자가 3월 47억2천만달러 순유출에서 4월 47억5천만달러 순유입으로 전환됐다. 채권 전문가들은 “WGBI 편입으로 외국인의 국채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면서 장기금리 안정과 재정 조달 비용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한다.
한편 내국인의 해외 직접투자(+62억4천만달러)와 해외 증권투자(+82억2천만달러)가 동시에 확대된 반면,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는 13억6천만달러 감소해 국내 실물 투자 유입의 한계도 함께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