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5년 반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반도체를 앞세운 수출 폭발과 설비투자 급증이 동시에 맞물리며 성장 엔진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이 성장의 온기가 국민의 체감경기까지 고르게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시장의 시선이 엇갈린다.
한국은행은 2026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 대비 잠정치)이 1.8%로 집계됐다고 9일 밝혔다. 4월 속보치(1.7%)보다 0.1%포인트(p) 높아진 수치로, 2020년 3분기(2.3%) 이후 5년 6개월 만의 최고치다.
지난해 1분기 역성장(-0.2%)에서 출발해 2분기 0.6%, 3분기 1.4%로 회복하다가 4분기(-0.1%) 다시 주저앉았던 한국 경제가 올해 들어 급반등한 것이다.
반도체·설비투자, ‘쌍끌이’ 성장 견인
1분기 성장의 핵심 동력은 수출과 설비투자였다. 수출은 반도체 등 IT 품목을 중심으로 5.9% 증가했다. 이는 2020년 3분기(14.9%) 이후 5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설비투자는 기계류와 운송장비를 중심으로 6.6% 급증하며 2021년 1분기(9.2%)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속보치 대비 무려 1.8%p나 상향 조정된 수치다.
업종별로는 ICT 제조업이 15.4% 증가하며 전체 제조업(+3.9%) 성장을 독보적으로 이끌었다. 반면 비ICT 제조업은 -0.9%로 감소해 반도체 편중 성장의 구조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성장 기여도를 보면 순수출이 1.1%p를 기여했고, 내수(소비+투자)는 0.7%p에 그쳤다.
명목 성장률 10.5%…’50년 만의 최고’, 물가 아닌 수익성 덕분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명목 지표의 급등이다. 1분기 명목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10.5%로, 1976년 1분기(13.0%) 이후 5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7.1%로 1995년 3분기 이후 30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한은 김화용 국민소득부장은 “명목 GDP 성장률 상승은 국내 물가 상승이 아니라 수출 기업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교역조건 개선과 수출 단가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실질 GNI 증가율은 9.2%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실질 GDP(1.8%)를 큰 폭으로 상회했다. 한국 경제가 양적 성장보다 ‘소득과 이익’ 측면에서 더 크게 호전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김 부장은 “기업 영업이익 확대는 법인세 증가로 재정 안정에 기여하고,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확충을 통해 내수 진작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치는 호황, 체감은 냉랭”…성장의 온기 어디까지 닿나
그러나 민간 경제연구소에서는 ‘반도체 편중’ 구조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민간소비는 겨우 0.6% 증가에 그쳤고, 정부소비는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 감소로 0.4% 감소했다. 경제학자들은 고금리와 가계부채 부담이 가계의 체감경기를 냉각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총저축률이 41.7%로 1988년 4분기 이후 37년 3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이중적으로 해석된다. 국민총처분가능소득 증가율(11.2%)이 최종 소비지출 증가율(1.2%)을 크게 상회한 결과인데, 업계에서는 “소득이 늘었지만 소비 대신 저축으로 흘러가는 방어적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편 이번 성장률 상향은 연간 전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은은 지난 5월 2026년 실질 GDP 성장률을 2.6%로 전망한 바 있다. 김 부장은 “1분기 수치 조정이 연간 성장률을 0.1%p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8월 경제전망 때 전망치가 2.7% 이상으로 상향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아울러 2025년 1인당 명목 GNI는 3만6,963달러(한화 5,257만원)로 잠정 집계됐다. 김 부장은 “현재의 높은 명목 증가세가 지속되면 올해 중 1인당 GNI 4만달러에 근접할 수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