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기사가 하루 종일 물건을 나르고, 배달기사가 빗속을 달려도 최저임금의 보호는 여전히 그 너머에 있다. 노동계 추산 약 870만 명에 달하는 도급제·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별도 적용하자는 시도가 또다시 좌절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6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5차 전원회의를 열고,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별도 적용 여부를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 11표, 반대 15표, 무효 1표로 부결이었다. 최저임금위는 “2027년 적용 최저임금은 도급제 근로자에 대해 별도 적용하지 않기로 의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결정으로 택배기사, 배달기사,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2027년에도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보호망 밖에 머물게 됐다. 관련 논의는 다시 내년으로 이월됐다.
‘사업자’ 딱지가 가른 보호의 경계
도급제는 일의 성과나 물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 근로 형태다. 문제의 핵심은 법적 지위에 있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을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택배·배달기사 등은 계약 구조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노동계는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을 법적 근거로 제시했다. 해당 조항은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정하기 어려운 경우, 실적에 따라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노동계는 “건당 수수료 방식으로 일하는 도급제 노동자에게 실적 기준의 최저임금을 별도로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사용자 측은 “해당 조항은 이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 이들에게 임금 산정 방식을 달리 적용하는 규정일 뿐”이라며, 법적 사업자인 도급제 노동자는 최저임금위의 논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맞섰다.

올해 시간당 1만320원, 그러나 이들에겐 무관한 숫자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20원으로, 전년보다 290원(2.9%) 인상됐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 숫자가 도급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보호와는 무관하다고 지적한다. 건당 수수료가 표면상 최저임금을 웃돌더라도,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을 포함한 실제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사례가 광범위하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한국노총은 “저임금 취약노동자 보호라는 최저임금 제도의 본래 취지를 외면한 결정”이라며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해야 할 최저임금위의 책무를 저버린 실망스러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전호일 대변인도 “노동부 장관이 심의를 요청했음에도 공익위원 다수가 반대해 부결된 것에 상당한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최저임금위 논의가 과거와 달랐던 점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심의요청서에 도급제 노동자 문제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며 공식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차례 회의를 거쳐도 노사 간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표결로 귀결됐다.
업종별 구분 적용 논의로 넘어가는 쟁점
다음 제6차 전원회의는 6월 16일 오후 3시에 열린다. 이번 회의에서는 사용자 측이 강하게 요구하는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 여부가 안건으로 오른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최저임금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 단 한 차례 시행된 뒤, 1989년부터는 단일 최저임금 체제로 유지돼 왔다.
노동 전문가들은 경영계가 요구하는 업종별 구분 적용과 노동계의 도급제 보호 확대 요구가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복잡하게 얽힐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업종별 차등 적용 논의가 마무리되면, 노사 양측은 2027년 적용 최저임금에 대한 최초 요구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노동계는 대폭 인상을, 경영계는 동결을 각각 주장하고 있어 본격적인 협상 국면에서도 충돌이 예상된다.
최저임금 법정 심의 시한은 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일로부터 90일 이내인 6월 말이다. 다만 실제 심의는 대체로 시한을 넘겨 7월까지 이어지는 관행이 반복돼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