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하려고 5억 썼다가
살해 협박까지 받았던 사연
한때 국민 영웅으로 불리던 축구 스타 안정환이 이탈리아로 이적한 후, 자신의 연봉 대부분을 명품 쇼핑에 다 썼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한국의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밝혀 모두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이 사연은 2001년 이탈리아 세리에 A 페루자에 입단한 안정환이 첫 연봉 45만 달러(당시 약 5억 원)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그가 입단하며 계약한 조건에는 연봉과 별개로 주택과 차량 제공은 물론, 통역까지 있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막상 훈련장에 나가 보니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다른 선수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고급 명품을 걸치고 있었던 것.
매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가던 안정환은 동료들의 ‘눈빛’을 느끼며 자신도 자연스럽게 명품 쇼핑을 시작했다. “나라를 대표해 왔는데, 주눅들어 보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하지만 안정환이 명품 소비에 열을 올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유럽에서 한국을 북한과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나라로 오해하는 분위기가 있음을 알게 됐다.
실제로 이탈리아 방송에는 북한 관련 뉴스가 자주 나오곤 했는데, 그가 한국인이라고 말할 때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로 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는 것이다.
안정환은 ‘대한민국도 충분히 여유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연봉을 거의 명품에 쏟아부으면서까지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그렇게 첫해 연봉은 대부분 명품 가게로 향했고, 한국을 향한 오해를 풀어주겠다는 각오로 고가의 옷과 액세서리를 걸친 채 경기장에 나섰다.
이탈리아에서 살해 협박까지?
그러나 이후 그에게 상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다음 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이 연장전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다. 한국의 8강 진출을 이끈 결정적 한 방이었지만, 그에게는 커다란 역풍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내에서 분노가 일었고, 페루자의 구단주까지 나서 “샌드위치도 사 먹을 돈 없는 염소 같은 선수를 받아줬더니 우리 축구를 망쳤다”는 격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뿐만 아니라 격앙된 팬들로부터 살해 협박이 잇따랐고, 결국 안정환은 월드컵 이후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의 아내가 혼자 남은 짐을 정리하러 이탈리아로 갔을 때는, 그가 연봉으로 산 차량이 팬들의 분노로 처참히 파손된 상태였다고 한다.
안정환은 이 사건 이후 이탈리아 팀을 떠나게 되었다. 비록 젊은 날의 통 큰 소비는 지나간 추억이 되었지만, 안정환의 사연에는 대한민국을 향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