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문구를 커피 텀블러 판촉 행사에 그대로 써서 나라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기업이 있다. 스타벅스코리아다. 그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2026년 6월 22일 오후 3시, 스타벅스코리아 전국 2,160여 개 매장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1999년 국내 1호점(이대점)을 연 이래 27년 만에 처음 있는 전국 동시 조기 영업 종료다.
커피 한 잔이 건드린 상처 — ‘탱크데이’의 실체
논란의 출발점은 지난달 스타벅스코리아가 진행한 텀블러 프로모션 이벤트다. 이 행사에서 ‘탱크 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마케팅 문구가 등장했다.
‘탱크’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가 광주 시민을 향해 투입한 군 탱크를 상징하는 단어다. ‘책상에 탁!’은 1987년 박종철 열사가 경찰 고문으로 숨졌을 때, 담당자가 사건을 은폐하려 내뱉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진술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두 사건 모두 한국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비극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아픔이다.
이 문구들이 텀블러 판촉 슬로건에 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역사적 비극을 상업적 밈으로 소비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쏟아졌다.
27년 만의 ‘전국 셧다운’ — 교육의 내용과 방식
스타벅스코리아는 6월 16일부터 전국 매장에 “영업시간 단축으로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안내문을 게시하고, 22일 오후 3시 전국 매장 조기 종료를 공식화했다.
영업이 멈춘 직후, 전국 매장 파트너(직원)들은 본사에서 지급한 전용 모니터 앞에 앉아, 약 3시간 분량의 교육 영상을 시청하게 된다. 콘텐츠는 6월 17일 성균관대 오제연 사학과 교수가 강의한 ‘기업이 가져야 할 올바른 역사 인식’과, 구정우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적 감수성과 윤리 기준’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스타벅스가 지향하는 가치와 미션을 공유하는 ‘브랜드 가치 워크숍’도 더해진다. 휴가 중인 직원은 추후 온라인으로 영상을 시청해 이수해야 한다. 모기업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회장도 오는 24일 사장단 회의에 앞서 계열사 대표들과 동일한 영상을 시청할 예정이다.
말뿐인 사과인가, 구조적 변화의 시작인가
스타벅스코리아는 교육에 그치지 않고 마케팅 의사결정 체계 전면 개편도 공표했다. 향후 모든 마케팅 기획 단계에서 외부 전문기관 자문을 거친 ‘사회적 민감도 체크리스트’ 적용을 의무화한다. 역사, 기념일, 정치, 재난, 군사, 젠더, 인권, 혐오 표현 등 민감 영역 전반을 점검 대상으로 명시했다.
또한 품질·법무 등 비(非)마케팅 부서 책임자가 참여하는 최종 검증 절차를 신설하고, 승인 과정 전반을 기록·관리하는 시스템도 도입한다. 역사적 가치 보존을 위한 사회공헌 기금 조성과 근현대 역사 유적지 환경 개선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론도 나온다. 단 하루, 3시간 교육이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느냐는 회의론과 함께, 다중 검증 시스템이 오히려 책임 소재를 분산시키는 방패막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회성 워크숍이 아닌 지속적인 교육 커리큘럼과 피드백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27년 만의 전국 동시 셧다운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상징적 행동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비용 있는 사과를 넘어 진정한 구조 변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일회성 위기관리 패키지에 머물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