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못 본 사람 경조사까지”…은퇴 후에도 끊지 못하는 ‘의무의 굴레’, 얼마나 무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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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들, 이제 ‘안 가도 되는 경조사’ 구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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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달력을 들여다보면 경조사 날짜로 빼곡하다. 친구 자녀 결혼식, 지인 부모 장례, 손주 돌잔치, 친척 회갑연. 한 달에 한 번은 기본이고, 많을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겹친다.

1회에 5만 원에서 10만 원, 친한 사이라면 그 이상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1년에 400만~5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은퇴 후 고정 수입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 돈은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니다.

습관이 된 의무, 은퇴 후에도 계속되는가

은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에 다닐 때 경조사는 사실상 ‘업무’의 연장이었다. 동료 부모의 칠순, 상사 자녀의 결혼식, 몸이 아파도 비가 와도 발걸음을 했다. 가지 않으면 ‘무례한 사람’이 되고 직장 생활에 지장이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직함이 있었고 명함이 있었고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그 울타리가 사라진다. 월급도 없고 직함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은퇴자가 관성처럼, 의무처럼 경조사에 계속 참석한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설명하면 ‘집단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공포’다. 한국 사회에서 경조사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관계의 서열과 결속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은퇴 후 그 공간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가야 할 경조사’와 ‘가지 않아도 될 경조사’를 구분하라

은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조사비를 아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관계라면 당연히 가야 한다. 50년 우정을 나눈 친구의 자녀 결혼식, 평생 의지했던 형제의 환갑, 은혜를 갚지 못한 은사의 장례. 이런 자리는 돈이 아깝지 않다.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 넘게 보지 못한 사람,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 그저 한때 같은 회사에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가는 경조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받는 쪽도 장부에 이름과 금액만 기록할 뿐이다.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1년 이상 교류가 없는 관계는 이미 ‘과거의 인연’으로 분류된다.

의무감으로 참석하는 것은 서로에게 심리적 부담만 줄 뿐이다. 불참 기준을 세우는 것은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한정된 에너지와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성숙한 인간관계의 기술이다.

연간 400만~500만 원의 경조사비는 배우자와의 제주도 여행이 될 수도 있고, 평생 배우고 싶었던 서예나 그림 수업이 될 수도 있다.

손주에게 줄 책이 되고, 자녀에게 건네는 작은 보탬이 되며, 나 자신의 노후를 든든히 하는 비상금이 된다.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처럼, 재물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함부로 쓰면 금방 바닥이 난다.

노년의 지혜는 ‘많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는 것’에 있다. 진심이 담긴 관계에만 마음과 돈을 쓰는 것, 그것이 은퇴 후 삶을 더 풍요롭고 당당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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