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한국 포탄에 줄 선 ‘결정적 이유’

폴란드가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 FA-50 전투기 48대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한국이 약속한 금융지원만 12조 원 규모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유럽의 군사적 무능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나라”로 한국을 주저 없이 꼽는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전통 방산강국들이 제대로 무기를 만들지 못하는 사이, K-방산이 유럽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유럽은 변곡점을 맞고 있다. 네덜란드는 국방비를 2024년 GDP 대비 1.9%에서 2035년 3.5%로 84% 증액하고, 병력을 8만명 미만에서 12만 2,000명으로 확대한다.
덴마크는 그린란드 방위를 위해 2025년에만 18억 유로를 투자한 뒤 같은 해 10월 37억 유로를 추가 투입했다. 러시아·중국의 북극권 군사자산 확대와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공약 불확실성이 유럽의 자주국방 의지를 자극한 결과다.
문제는 EU가 조성한 235조 원 규모의 방산기금 ‘SAFE 프로그램’이다. 이 기금을 활용하려면 구매 장비의 최소 65% 이상을 유럽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
사실상 역외 국가의 진입을 차단하는 보호무역 장벽이다. K-방산의 가성비 우위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제도적 벽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탄약 생산부터 무너진 유럽 방산

유럽 방산업체들의 구조적 한계는 탄약 생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 라인메탈 등은 2025년까지 연간 200만 발의 포탄을 생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026년 현재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원료 수급이다.
포탄의 핵심 화약인 니트로셀룰로스 생산에 필요한 목재펄프의 7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데, 중국이 수출량을 제한하면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독일이 개발하는 무기체계는 또 다른 문제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비싸며, 부품 생산체계가 유럽 전역으로 분산돼 운송과 품질관리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은 남부 지역에 생산 업체가 집중 배치돼 운송비를 절감하고, 부품 대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하면서 공급망 효율을 극대화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기술과 독일 대비 낮은 인건비, 중국 원료 공급처와의 근접성까지 더해진다.
포탄 한 발에 100만원 vs 1,270만원
한국의 155mm 포탄 생산 가격은 신관 포함 표준탄 기준 약 100만 원 수준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유럽 대비 최소 30% 이상 저렴하다”고 평가한다.
나토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전 발당 270만 원이던 포탄 가격이 전쟁 후 1,270만 원으로 4배 이상 폭등했다. 유럽이 대량 생산으로 가격을 낮췄다 해도, 한국의 원가 경쟁력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실제 수출 성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은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50만 발 이상의 155mm 포탄을 제공했는데, 이는 1970년대 미국이 생산해 조만간 폐기할 예정이던 노후 탄약이었다.
한국은 이를 넘겨주고 미국으로부터 50만 발 신규 비축탄 생산 자금을 받았다. 유통기한 임박 재고를 처리하며 신규 물량 대금까지 확보한 셈이다.
풍산은 2025년까지 680억 원을 투자해 연간 탄약 생산능력을 20만 발에서 40만 발로 두 배 늘렸고, 폴란드로부터만 1,647억 원 규모의 포탄을 수주했다.
영국·프랑스 핵전력 부실이 기회로
유럽의 또 다른 약점은 핵전력이다. 러시아가 5,5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1,700여 발을 실전 배치한 반면, 영국은 225발, 프랑스는 290발에 불과하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의 핵 능력마저 의심받고 있다. 영국 해군의 전략 원자력잠수함 뱅가드급은 2024년 8월부터 204일간 항해를 이어가며 역대 최장 순찰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네 척 중 한 척이 정비에 들어가고 나머지 두 척도 유지보수와 승조원 확보에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다.
2024년 1월에는 뱅가드함에서 발사한 트라이던트 2 미사일이 점화 직후 수 미터만 비행하다 바다로 추락했다. 2016년에 이어 2회 연속 발사 실패다.
미 해군은 2023년과 2025년 테스트에서 모두 성공했기에, 트라이던트 자체보다는 영국의 운용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2025년 7월 공동으로 차세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로 합의했고, 영국은 신형 드레드노트급 전략 원자력잠수함 네 척 건조에 29조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무엇보다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한 방안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유럽이 방산 자립을 외치지만, 생산 능력과 핵 전력 모두에서 구조적 공백이 존재하는 것이다.
235조 방산기금이 ‘게임 체인저’ 될까
국내 방산 관계자들은 “향후에도 한국제 무기, 특히 지상무기는 유럽 시장에 진출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낙관한다.
영국 BAE시스템즈의 수주 잔고가 163조 원을 돌파하고 주가가 1년 새 57% 폭등한 것처럼, 유럽 방산 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SAFE 프로그램의 ‘65% 역내생산 조건’은 변수다. 캐나다가 156억 원의 가입비를 내고 기금에 참여한 것처럼, 제도적 진입장벽은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2026년 기준 독일의 국방예산은 170조 원으로, 한국의 66조 원보다 2.5배 이상 크다. 단기적으로는 K-방산의 가성비와 납기 신뢰성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유럽의 자체 생산 역량이 회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K-방산의 유럽 시장 지속가능성은 ‘보호무역 장벽을 어떻게 우회하느냐’에 달렸다. 현지 생산 거점 확보, 유럽 업체와의 합작, 틈새 품목 특화 등 전략적 다변화 없이는 폴란드 특수가 반복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