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돈만 1655억 원
제재는커녕, 감시도 구멍
금융권의 민낯 드러났다

믿음의 상징이어야 할 금융기관에서 최근 몇 달 사이 연이어 직원들의 범죄 행위가 발각됐으며, 그로 인한 누적 피해액만 1655억 원에 달했다.
해당 기관이 자사의 직원들에게조차 당하며 ‘몰랐다’고 해명하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드러난 DB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의 내부 통제 실패는 한국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게 굴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9년간 355억… 상품권으로 돈 세탁한 증권사 직원

DB증권의 한 직원은 2016년부터 올해 5월까지 무려 9년에 걸쳐 355억 원 규모의 ‘상품권깡’을 저질렀다.
그는 회사 이벤트용으로 상품권을 구매하는 업무를 맡았지만, 이벤트가 끝난 후에도 상품권을 꾸준히 사들였다.
특히 11번가를 통해 대량 구매한 신세계 상품권을 기프티콘으로 본인과 아들의 번호로 전송한 뒤, 시세보다 약간 낮은 가격으로 현금화했다.
상품권 구매가 ‘후불 결제’라는 점을 악용해 돌려막기를 지속했고, 이 현금은 생활비뿐 아니라 주식, 가상자산 투자 등에도 흘러 들어갔다.

놀라운 건 그가 수차례 회사 인감을 무단 사용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고, 상품권 구매에 활용된 ID를 별도 계약 없이 지속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인보이스도 본인의 개인 메일로 수령하고, 정산은 개인 계좌로 이뤄졌다.
DB증권 측은 “인장 날인 시점에서의 기망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했다”며 이제야 문서 점검과 솔루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충격적인 건 내부 감사의 허술함이다. 9년 동안 감사는 총 두 번 이루어졌지만, 2022년에는 해당 위법 행위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2025년 감사에서야 뒤늦게 사건이 드러났다.
손실 숨기고 성과급까지… 조작의 끝은 없었다

신한투자증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ETF 유동성 공급자(LP) 부서에서 1300억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했지만, 해당 부서 직원들은 이를 숨기기 위해 손익 자료를 조작하고, 허위 거래까지 전산 시스템에 입력했다.
이들은 원화 평가손익을 마이너스 7억에서 플러스 5억으로 조작했고, 그 결과 약 5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도 챙겼다.
심지어 1조2000억 원 규모의 선물 매수 거래에서 1289억 원 손실을 본 직후, 하루 만에 반대 스와프 거래를 입력해 마치 1300억 원의 이익이 난 것처럼 꾸미는 등 범행 수법은 대담하고도 정교했다.
이에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수부는 담당자 2명을 사기 및 위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강화된 규정, 그러나 이미 벌어진 사고

사건이 커지자, 두 증권사는 뒤늦게 내부통제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DB증권은 7월부터 임원의 책무에 ‘계약 체결·유지·사후관리’ 항목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장기 근무자의 통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직무 순환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신한투자증권은 더 나아가 모든 임원을 대상으로 내부통제 위반 시 성과급 전액을 차감하는 집단 책임제를 선언했다. 또한 내부통제를 주요 평가 항목으로 삼고, 우수 부서에 대한 포상 제도까지 신설했다.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대표는 “보이지 않는 리스크까지 치유해야 고객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과 증권사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벌어진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면 더 큰 사고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 “결국 손실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금융기관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업계 전반의 전수조사와 근본적 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직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구조적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