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벌었다기에 샀더니”… 월가가 이례적으로 경고한 AI 신약 개발의 거대한 ‘착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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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에피스, 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신약 개발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월가를 달구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월 12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AI의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월가가 기대하는 속도로 경제적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신약 개발에 뛰어든 AI가 실험실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임상에 진입한 후보물질 중 실제 시장 출시까지 가는 비율은 고작 10% 안팎에 불과하며, 그 과정에는 평균 10~15년의 시간과 10억~20억 달러(약 1조3천억~2조6천억 원)의 비용이 수반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신약 개발 생산성은 오히려 낮아진다는 역설, 이른바 ‘이룸의 법칙(Eroom’s Law)’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지가 현재 업계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연구실에선 ‘혁명’, 임상에선 ‘제자리’

AI는 이미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단백질 구조 예측, 잠재적 약물 표적 식별, 수백만 개의 분자 가상 스크리닝 등 기존에 수개월이 걸리던 작업들이 AI로 인해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졌다.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에서 일하는 전산 생물학자 아비브 레게브는 이른바 ‘루프형 연구실’을 운영 중이다. AI 모델이 유망 표적과 분자를 예측하면 연구원이 이를 검증하고, 그 결과를 다시 AI에 입력해 다음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그는 “AI가 개별 연구자보다 똑똑한 건 아니지만, 방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인코딩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험실의 성과가 인체에서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배양세포, 실험동물, 컴퓨터 모델은 복잡한 인체를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하며, 이 간극이 여전히 신약 개발의 가장 높은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AI 신약 개발
코로나 백신 연합뉴스

‘개구리에 자전거 가르쳐 웨이모 운전시키기’

‘이룸의 법칙’이라는 용어를 처음 명명한 잭 스캐널은 현재 AI 신약 개발의 데이터 한계를 신랄하게 비유했다. 그는 “오늘날 인체 생물학 데이터로 AI를 훈련하는 것은, 개구리에게 사막에서 자전거를 타도록 한 뒤 이 엉뚱한 데이터로 복잡한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자율주행차 웨이모를 운행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축적된 생물학·임상 데이터는 편향돼 있고, 특정 조건과 집단에만 국한된다. AI 모델이 실험실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도, 다양한 인구집단과 동반질환을 가진 실제 환자에게 동일한 효과를 증명하려면 여전히 대규모 임상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반도체 성능이 일정 기간마다 두 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과 달리, 신약 개발에서는 R&D 투자가 수십 배 늘어도 승인 신약 수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가 1950년대 이후 지속돼 왔다. 업계 전문가들은 AI가 이 장기 추세를 단기간에 뒤집기는 어렵다고 본다.

빅테크의 진입…구조적 변화의 시작인가

앤트로픽 / 연합뉴스

그럼에도 AI 기업들의 행보는 공격적이다. 앤트로픽은 2026년 6월 30일 생명과학용 제품 ‘Claude Science’를 공개하며 내부 신약 개발 프로그램 출범을 공식화했다. 전통 제약사가 상업성 부족으로 외면해온 ‘소외 질환’에 초점을 두겠다는 전략도 내세웠다.

앤트로픽의 생명과학 부문 책임자 에릭 카우더러-에이브럼스는 “AI가 여러 병목 현상을 동시에 해결해 신약의 임상 성공 확률을 높일 것”이라면서도 “AI를 활용한 제약산업은 이제 겨우 2회 말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신약을 시장에 내놓는 데 드는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십억 달러의 비용, 높은 임상 실패율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AI 설계 분자가 다수의 임상 2상·3상에 진입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룸의 법칙을 완전히 극복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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