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달러 환율이 17년 만의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가운데, 한때 중산층 소비문화의 상징이었던 해외 직접구매(직구) 시장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고환율과 고유가가 동시에 덮치면서 직구의 핵심 경쟁력인 ‘가격 메리트’가 사라진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배송대행업체들의 부실·잠적 사태까지 이어지며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는 양상이다.
환율 1,561원·유류할증료 33단계…이중 충격에 직구 시장 ‘직격탄’
지난 6월 6일 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61.5원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절정이던 2009년 3월(장중 고가 1,597.0원) 이후 17년 3개월 만의 최고치다.
같은 시기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역대 최고인 33단계까지 올랐다. 환율과 유가라는 두 변수가 동시에 정점을 향해 달리면서, 해외 상품을 구매해 국내로 들여오는 비용 전반이 급격히 늘어난 구조다.
실제 가격 변화는 소비자가 체감으로 확인하고 있다. 미국 알레르기성 비염약 ‘커클랜드 알러텍’을 직구해온 30대 장 모 씨는 “가격이 2만 원 초반대에서 3만 원 후반대로 뛰어 장점이 사실상 사라졌다”며 동일 성분 한국 제품으로 전환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2010년대 초 환율이 1,000~1,150원대에 머물던 시절, 다이슨 청소기나 삼성·LG 대형 TV를 국내의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던 직구의 황금기는 사실상 끝물에 접어들었다.

배송대행업체 줄줄이 이상 징후…피해자 700명, 1000만원 이상 피해도
고환율·고유가의 충격은 영세 배송대행업체를 먼저 무너뜨리고 있다. 2013년부터 운영해온 미국 소재 배송대행업체 투패스츠는 올해 3월부터 국내 배송이 이뤄지지 않거나 고객센터 답변이 지연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인원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기준 700여 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이 자체 실시한 설문조사(347명 응답)에서는 미출고 신고가 4월을 기점으로 급증했으며, 응답자 중 10명은 1,000만 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30대 김 모 씨는 “240달러(약 37만 원) 상당 운동화를 주문하고 배송비까지 결제했는데 물건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가 투패스츠의 공개 고객센터 번호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없는 번호’라는 안내만 돌아왔다. 홈페이지 회원가입도 정상 작동하지 않아 공식 입장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W사, N사 등 다른 업체에서도 배송 지연·운영 차질이 잇따르면서, 지난해 폐업 수순을 밟은 코트리에 이어 부실이 도미노처럼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직구업계 관계자는 “1,500원대가 뉴노멀이 되면서 영세업체일수록 견디기 어려운 환경인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달러 기준 직구 규모 13% 감소…중국 C-커머스가 60% 장악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온라인 해외 직접구매액은 1조 9,78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에 그쳤다. 2025년 2분기(5.6%)·3분기(9.2%)까지 유지되던 성장세는 4분기(1.6%)부터 꺾였고, 올해 1분기에는 사실상 정체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한국은행 집계에서는 더 냉혹한 숫자가 나온다. 달러 기준 1분기 해외 직구 규모는 13억 5,000만 달러로 직전 분기 대비 13.1% 감소했다. 원화 기준으로는 소폭 증가처럼 보이지만, 달러 기준으로는 실질 거래 물량이 뚜렷이 줄고 있는 셈이다.
시장 구조 자체도 재편되고 있다. 1분기 해외직구액 중 중국 비중은 1조 2,276억 원으로 전체의 60%를 넘어섰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C-커머스(중국계 이커머스)가 초저가·직배송을 앞세워 기존 배송대행업체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해외직구=미국·유럽 브랜드’라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구매대행·배송대행 플랫폼 거래가 모두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영세 사업자가 피해배상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소비자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