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빌려 쓰는 이른바 ‘한은 마이너스통장’ 규모가 올해 상반기 들어 4년 만에 가장 작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초호황이 국고를 채우면서 단기 자금 조달의 필요성 자체가 줄어든 결과다.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정부의 대정부 일시대출 총액은 44조1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88조6천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2022년 상반기(30조2천억원) 이후 4년 만의 최소치다.
이자 부담도 눈에 띄게 줄었다. 상반기 납부 이자액은 214억원으로, 역대 최대 차입을 기록했던 2024년 상반기(1천291억7천만원)와 비교하면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마이너스통장 의존 재정’에서 벗어나나
대정부 일시대출은 정부가 세입과 세출 사이의 시간차로 발생하는 단기 자금 부족을 메우는 제도다.
2023년 상반기 차입이 87조2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하고, 2024년에는 91조6천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상시 차입 재정’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2023년 7월에는 한은 대정부 일시대출 잔액이 100조8천억원에 달해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올해는 이 흐름이 역전됐다. 월 평균 잔액도 2023~2025년 14~15조원대에서 7조3천50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세수 선물’
차입 감소의 핵심 배경은 반도체 경기 반등에 따른 법인세 초과 세수다. 정부는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에서 법인세 세입 전망을 86조5천억원에서 101조3천억원으로 14조8천억원(17.1%) 상향 조정했다. 법인세 세입 전망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SK하이닉스의 법인세 납부액은 2024년 3천111억원에서 2025년 6천182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었으며, 2026년에는 8천81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세수가 써야 할 적정 시기에 잘 들어왔기 때문에 굳이 차입하지 않고 세출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도적 변화도 차입 축소에 힘을 실었다. 한국은행은 2024년 약정에 ‘일시 차입금 평균 잔액이 재정증권 평균 잔액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조건을 명시했고, 2026년부터는 이자 산정 주기를 분기에서 월 단위로 바꿔 차입 비용 관리를 강화했다.
OECD는 2027년 이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처음으로 1.5% 아래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 사이클의 특성상 초호황 이후 수요 조정 국면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100조원대 법인세 세입이 중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