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 물러난 뒤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최대 5년, 이 ‘소득 절벽’ 구간을 버텨야 하는 현실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법정 정년은 만 60세인데,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최대 만 65세다. 이 공백이 노인 빈곤을 구조화하는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지난달 27~28일 전국 만 20~69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법정 정년을 만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88.3%에 달했다. ‘매우 찬성’ 45.1%, ‘대체로 찬성’ 43.2%로, 사실상 전 연령대가 한목소리를 낸 셈이다.
연금 공백·고령 빈곤이 찬성 여론 밀어 올렸다
정년 연장을 지지하는 이유(복수 응답)로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의 차이 해소’가 69.0%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수명 연장으로 더 오래 일하며 의미 있는 삶’이 50.7%, ‘인구 감소에 따른 숙련 인력 부족’이 39.8%, ‘고령자의 기술·경험·노하우 활용’이 39.3%로 뒤를 이었다.
이 수치는 여론의 동인이 단순한 ‘일하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 구조적 빈곤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고령층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은 93.1%, ‘소득 절벽 해결이 시급하다’는 응답은 95.1%에 달했다.
방식 놓고 세대·노사 간 시각차 뚜렷

정년 연장 방식에 대한 선호는 갈렸다. ‘법 개정을 통해 모든 기업의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로 의무화’하는 방식이 46.3%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선택적 계속 고용(재고용)’ 방식은 37.1%였고, ‘정년제 완전 폐지’는 9.6%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30~50대가 법적 의무화를 강하게 선호한 반면, 20대와 60대 이상은 선택적 계속 고용을 상대적으로 더 선호했다. 노사 간 입장도 엇갈린다.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은 지난 4월 방송에서 “재계는 재고용을, 노동계는 법적 정년 연장을 선호한다”며 “두 의견을 어떻게 조합해 현장에서 작동하게 할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임금 조정 방식에 대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직무 조정을 통한 임금 조정 수용’이 48.9%로 가장 높았다. ’61~65세 임금피크제 수용’이 25.7%, ‘기존 임금·노동 조건 유지’가 15.4%였다. 급여를 어느 정도 양보하더라도 고용 안정을 확보하는 ‘연착륙’을 원하는 여론이 두드러진다.
청년 일자리 잠식 우려…세대 갈등 불씨로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는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중장년과 청년의 직무가 달라 일자리 잠식 우려가 크지 않다’는 응답은 42.7%였으며, 특히 40~60대에서 이 인식이 강했다. 반면 ‘청년 고용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응답은 36.0%로, 20~30대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청년층은 정년 연장 자체를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조건부 찬성’의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OECD·ILO의 연구에서는 고령층 고용 증가가 청년 일자리와 1:1로 대체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결과가 반복 제시돼 왔다. 다만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와 경직된 노동시장이 겹치면 특정 직종에서는 단기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현재 상반기 내 정책 방향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영훈 장관은 “논의가 상당히 숙성돼 노사와 정부의 결단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정년 60세 의무화를 도입했던 2010년대와 달리 지금은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고 청년 인구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다. 법정 정년 65세 의무화와 선택적 재고용 모델의 접점을 어디서 찾느냐가 이 시대 노동 정책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