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도 전투기 출격, 잠들기 전에도 레이더 경보. 대만 공군 조종사들에게 ‘평시’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의 군사 압박이 ‘예외적 도발’에서 ‘일상’으로 전환된 지금, 대만이 직면한 위협의 본질은 미사일이나 폭탄이 아니라 끝없는 소모 그 자체다.
2026년 1월 한 달간 중국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 침범은 무려 166회에 달했다. 같은 해 3월에는 25회로 급감했지만, 이는 위협의 완화가 아니라 전술 전환의 신호로 해석된다. 대만 ‘한광 42호’ 훈련이 시작된 4월 11일을 전후해 중국군 항공기 37대와 군함 7척이 대만 주변에 집결했으며, 이 중 22대는 해협 중간선을 넘거나 ADIZ에 직접 진입했다.
중국 국방부는 이를 두고 ‘통상적 훈련’이라 강변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스탠퍼드대 중국 해상활동 추적 프로젝트의 레이 파웰은 중국이 설정한 최장 40일짜리 비행 경고 구역이 단순 훈련이 아닌 “지속적인 작전 준비 태세”와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과거 수십 년간 중국 군용기의 대만 해협 중간선 침범은 대형 외교적 마찰을 각오해야 할 만큼 극히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지금 그 선은 사실상 지워졌다.
중국군 항공기와 함정이 매일같이 중간선을 가로지르며 대만의 ADIZ를 유린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위기의 임계점 자체가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식 회색지대 전략의 핵심이다. 무력 충돌의 직전까지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되, 국제사회가 제재 명분을 찾지 못하도록 ‘훈련’이라는 포장지로 감싸는 것이다. 미국 해군 전쟁대학 중국해양연구소의 크리스토퍼 샤먼은 이 훈련들이 대만 분쟁 시 미군이 사용할 항로에 대한 통제권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석한다.
회색지대 전략의 가장 치명적인 효과는 전투 없이도 상대의 전력을 깎아내린다는 데 있다. 중국 군용기가 대만 주변을 비행할 때마다 대만 공군은 매뉴얼에 따라 요격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켜야 하고, 이 과정이 수년째 누적되면서 기체 노후화 가속화와 조종사의 육체적·심리적 피로 누적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이 교대조를 편성해 여유 있게 비행하는 동안, 대만 조종사는 하루에도 수차례 출격 명령을 소화해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이미 중국이 2027년까지 대만 전쟁에서 승리할 군사 역량을 갖추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최근 3년간 중국은 대만 주변에서 4차례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며, 매 훈련마다 규모를 확대해왔다.
만약 중국이 소모전으로 대만의 대응 역량을 서서히 마비시킨 뒤 통상적 훈련을 위장한 기습 상륙 작전을 감행할 경우, 대만이 감당할 방어 여력이 얼마나 남아있을지가 진짜 핵심 질문이다.
한광 42호, 소모전의 답이 될 수 있나
대만은 4월 11일부터 24일까지 최대 규모 연례 훈련 ‘한광 42호’를 진행 중이다. M1A2T 전차와 드론 등 신형 장비를 투입한 이번 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반 지휘소 훈련(CPX)으로 진행되며, 야외기동훈련(FTX)은 8월에 예정되어 있다.
대만이 방위 역량 강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이지만, 훈련 개시 전날부터 중국군 37대의 항공기가 집결한 현실은 이 훈련이 처음부터 압박 속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대만이 직면한 문제는 특정 훈련 한 번으로 해소될 성질이 아니다.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은 전쟁 선포 없이 상대를 고갈시키는 장기 시나리오이며, 대만의 방위 자산이 하루하루 마모되는 동안 국제사회는 제재 명분조차 찾지 못하는 구조적 딜레마가 이미 현실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