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에서 병사들이 목숨을 바치는 동안,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은 고급 부동산 사업으로 배를 불리고 있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그림자이자 전시 정권의 실세로 통하던 안드리 예르마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액의 자금 세탁 혐의로 구속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시 지도부의 도덕성이 치명타를 맞았다.
키이우 법원은 예르마크 전 실장에 대해 재판 시작 전까지 60일간 구금을 명령했다. 법원이 책정한 보석금 규모는 약 47억 원으로, 일반적인 부패 사건을 압도하는 이례적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비리를 넘어 서방의 원조를 전쟁 동력으로 삼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 자체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156억 원 세탁 혐의
우크라이나 반부패 당국이 밝힌 예르마크의 혐의는 충격적이다. 그는 2021년부터 2025년 사이 키이우 인근 고급 주택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약 156억 원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오른팔로 국가 안보와 외교의 핵심을 관장하던 인물이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예르마크는 반부패 당국의 무리한 기소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으며, 유죄가 확정될 경우 최대 징역 12년에 처해질 수 있다.
국민 54% “러시아보다 부패가 더 무섭다”
이번 구속 사태는 우크라이나 내부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54%가 국가 발전의 최대 위협으로 러시아가 아닌 내부 부패를 지목했으며, 러시아를 위협으로 꼽은 응답은 39%에 그쳤다. 전시 지도부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이 그만큼 깊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르마크를 사퇴시키며 인적 쇄신에 나섰지만, 이미 번진 불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방 지원 동력 흔들…지정학적 자해로 귀결
국제 사회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지원금의 투명한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로서는 군사·재정 지원의 신뢰를 유지하는 일이 전선 못지않게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필수적인 반부패 개혁 의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점에서 터진 이번 악재는 우크라이나의 국제적 입지를 좁히고, 나토 및 유럽과의 연대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르마크의 추락은 결국 외부의 포탄보다 무서운 것은 내부에서 썩어 들어가는 부패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