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편 가르기’, 美 동맹 뒤흔들까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 작전을 3주 만에 펼쳤다. 이란 함정 130척을 피격하고 8,000개 이상의 군사 목표물을 타격했으며, 호르무즈 해협 인근 지하 미사일 시설까지 파괴했다.
그러나 해협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은 미국이 예상하지 못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모두를 막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은 통과시키겠다’는 선별 통과 전략이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일본과 협의를 거쳐 일본 선박의 해협 통과를 허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은 해협을 전면 봉쇄한 것이 아니라, 공격에 가담한 적국 선박만 차단하고 있다”며 “비적대국은 협의를 통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란은 파키스탄·인도·터키 선박의 통과를 이미 허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다. 해협 통제권을 외교 협상의 무기로 전환하는 동시에, 미국 주도의 해상 동맹을 내부에서 분열시키려는 계산된 전략으로 읽힌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은 현재 이란이 쥐고 있다”며 “미국이 아닌 이란과 협상 테이블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동맹 균열의 진원지, 호르무즈
트럼프 대통령은 48시간 내 해협 완전 개방을 요구하며 “거부 시 이란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동시에 한국·일본·영국·프랑스 등 동맹국에 해상 연합 참여를 압박하고 있으며, 약 7개국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란의 선별 통과 전략은 이 연합 구성에 복잡한 변수를 던져주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 브래드 쿠퍼 사령관은 “이란의 항행 위협 능력은 약화됐다”고 평가했지만, 실질적 봉쇄는 지속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물동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핵심 길목으로, 봉쇄 장기화에 따라 알루미늄 가격이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도 파장이 미치고 있다.
싱가포르, 탄중 펠레파스 등 아시아 주요 환적 허브도 체선이 증가하며 공급망 교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에 꽂힌 이란의 쐐기
이란의 ‘일본 예외’ 메시지는 미·일 동맹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 전략이다. 일본은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면서도 이란과의 역사적 외교 채널을 유지해온 나라다.
이란은 일본인 억류자 일부를 석방하고 선박 통과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협상 여지를 적극적으로 넓히고 있다.
일본 정부 내부에서도 기류가 엇갈린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란과 직접 협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도 “미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워싱턴에서 회담을 이어가는 가운데, 일본은 전면적 동맹 편승과 독자 외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전함 대신 기뢰 제거…日의 절충 전략
일본이 꺼낸 답은 ‘기뢰 제거’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일본의 기뢰 제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휴전이 성립되고 기뢰가 항행 장애가 될 경우 자위대 파견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배치했으며 미군이 일부 제거 작전을 이미 진행했다는 점에서, 이 절충안은 현실적 수요와도 맞닿아 있다. 전투 파병은 피하되, 기술 기여로 동맹 책임을 분담한다는 구상이다.
한국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3월 18일 해양수산부·국방부·해양경찰청과 합동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주아랍에미리트·사우디·카타르 대사관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동향 및 한국 선박·선원 현황을 공유하고 단계별 대피 계획을 점검했다.
이란이 선별 통과의 기준을 ‘협의 여부’로 설정한 만큼, 한국 역시 이란과의 직접 채널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단순한 군사적 대치의 공간을 넘어, 동맹 구조 자체를 시험하는 지정학적 무대가 됐다. 이란의 선별 통과 전략이 본격화될수록, ‘누구 편인가’보다 ‘누가 먼저 협상 테이블에 앉느냐’가 각국의 에너지 안보를 좌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