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 중공군 격퇴
영웅의 피 이은 증손자
평화의 사명 잇다

전쟁의 역사가 평화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1951년 5월 26일 가평 전투에서 240명의 병력으로 4천여 명의 중공군을 격퇴하며 ‘기적’을 일궈낸 미 육군 프랭크 댈리 준장(당시 중령)의 증손자가 70여 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증손자 키튼 댈리(20)는 현재 부산에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선교사로 활동 중이다.
증조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켜낸 땅에서 이번에는 평화의 사명을 수행하는 청년의 이야기는 한미동맹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
세계 전사에 남을 비대칭 승리

미군 제213야전포병대대가 기록한 가평 전투는 군사전술 교범에 등재될 만한 역사적 전과다. 중공군 350명 전사, 830명 생포라는 압도적 전과를 올리면서도 아군 전사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브리검영대 마크 피터슨 명예교수는 이를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일방적인 승리 중 하나”로 평가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부대 표창을 수여했다.
213대대의 특별함은 구성원의 배경에서도 드러난다. 유타주 시더시티 등 소도시 출신 600명으로 편성된 이 부대는 대부분이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신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베테랑이었던 댈리 중령은 전쟁 경험이 없는 젊은 병사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기적적으로 전원 무사귀환을 달성했다.
전략적 요충지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

가평은 서울로 향하는 중부 전선의 핵심 축선이었다.
1951년 4월 영연방 제27여단의 가평 전투에 이어, 5월에는 213대대가 화악리(현 홍적리) 일대에서 보병 엄호 없이 고립된 상황에서 중공군 4천 명의 포위망 돌파 시도를 저지했다.
댈리 중령의 “오늘 취침은 없다”는 명령 아래 대대원들은 협곡을 통한 중공군의 양면 공격을 야포와 소화기로 격퇴했다.
이 전투는 중공군 춘계 대공세를 좌절시킨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고, 유엔군이 북한강 남쪽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어줬다.
7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인연

키튼 댈리의 한국 파견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 지도부가 지원자 정보 없이 배정하는 시스템에서 한국으로 발령받은 순간, 그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증조할아버지의 군번표를 몸에 지니고 활동하며 “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가평 전투의 교훈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가평 전투 74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가족 대표로 연설했다.
2009년 자매결연을 맺은 가평군과 시더시티에는 참전기념비가 나란히 건립돼 있다.
한국 국가보훈부는 2015년 댈리 준장을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으며, 미 40사단이 건립한 가이사중고등학교(현 가평고등학교)는 참전용사들의 후원으로 지금까지 장학금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키튼 댈리는 “증조할아버지도 한국의 놀라운 성취를 보면 매우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라며 “한국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떠나고 싶다”고 밝혔다. 오는 10월 귀국 후에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키튼 댈리님의 헌신과 한국 사랑을 박수로 응원합니당!!..^^
미군의 참전으로 한국을 위해 전투했던 모든 미군 장병들께 진심으로 검사를 드립니다
한국을 위해 전투했던 모든 미군 장병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을 위해 전투했던 모든 미군 장병들에게 검사를 드려요.
키튼댈리.고맙습니다.우리나라를지켜주신모든분들.경의표합니다.이러하신분들때문에.우리나라가잇을수잇는데.북한중국지령받는좌파들바라.6.25.만생각해도.북한중국
나라가 위급할 때 동맹은 영원한 동맹입니다~!
결코 잊지 맙시다 그 분들의 희생과 사랑을~!
키튼 댈리님께 머리숙여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미군은 우릴 짱게.돼지 푸틴으로부터 구해주었다
미군개입 없었으면.지금쯤 대충 짱게.푸틴이 돼지를내세워 이나랄 관리하고있겠지ㆍ억압과.독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