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분쟁 종결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제 안보 전문가들의 시선은 차갑다. 평화의 언어 뒤에 숨겨진 전략적 셈법이 너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재로 성사된 짧은 휴전은 진정한 전쟁 종식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안한 이른바 ‘약간의 휴전(Slight Ceasefire)’은 러시아가 현재의 전장 상황을 외교적으로 굳히는 데 활용할 명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 없는 협상 테이블
크렘린궁의 전략은 이중 구도로 작동한다. 푸틴은 대외적으로 평화를 원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실무진은 타협의 여지를 철저히 차단한다. 유럽 측 협상 파트너로 친러 성향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지목한 것은 이 계산된 이중 플레이의 핵심 장면이다.
이는 전쟁의 직접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하겠다는 선언이다. 전쟁 비용에 지친 일부 유럽 국가들과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직접 거래하겠다는 위험한 구도로, 분단국가 한국에 낯설지 않은 패턴이다.
동결된 전쟁, 세 가지 목표
러시아의 궁극적 목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현재 장악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사실상의 자국 통제로 국제사회에 인정받는 것, 그에 따른 서방의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것,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경로를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총성이 멈추는 사이 러시아는 소모된 병력과 무기를 재정비할 시간을 확보한다. 진정한 종전이 아니라 다음 라운드를 위한 전략적 휴지기인 셈이다.
국제전략 분석가들은 이를 ‘역 키신저 전략’의 맥락에서 읽기도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큰 그림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강대국 외교의 소모품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주목하는 ‘성공 사례’
이 냉혹한 동결 시나리오가 완성될 경우, 가장 위험한 반향은 한반도에서 울린다. 무력으로 타국의 영토를 탈취하고 시간을 버티면 국제사회가 결국 그 현실을 인정한다는 끔찍한 선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2024년 헌법 개정을 통해 ‘동포’ 개념과 ‘평화 통일’ 조항을 삭제하며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의지를 공식화했다.
핵무기를 손에 쥐고 장기 대립을 버텨내기만 하면 언젠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타협을 강요할 수 있다는 확신,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동결 시나리오는 북한에 바로 그 확신의 근거를 제공한다. 푸틴이 미소를 띠며 던진 평화라는 이름의 미끼가 사실은 무력 현상 변경을 용인하는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국제사회가 직면한 진정한 위협은 전쟁의 지속이 아니라 기만적인 타협 그 자체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