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인이 말을 잘 못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히 ‘결핍’일까. 세계 연구자들이 이 오래된 질문에 새로운 답을 내놓고 있다.
수십 년간 자폐 진단의 기준이 되어온 ‘스펙트럼’ 모델이 오히려 자폐인의 실제 삶을 가리고 있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힘을 얻고 있다.
40년 된 ‘스펙트럼’ 모델, 무엇이 문제인가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은 1980년대 영국 정신과 의사 로나 윙이 처음 체계화했다. 자폐의 다양한 증상 정도를 하나의 연속선으로 설명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모델이 ‘결손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현재 진단에 활용되는 DSM-5 기준은 사회적 의사소통 결핍과 반복적 행동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진단은 대부분 의사의 외부 관찰에 근거하며, 자폐인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는 체계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리즈대학교 루 하비 교수와 셰필드 할람대학교 크리스 베일리 선임 강사는 “이러한 모델이 자폐인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오해하거나 간과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정상적 소통’이라는 편견, 신경정상주의의 그림자
비평가들은 기존 자폐 모델이 ‘신경정상주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경정상주의란 음성 언어와 눈맞춤 등 주류적 의사소통 방식만을 ‘정상’으로 보는 믿음으로, 1998년 주디 싱어가 ‘신경다양성’ 개념을 학술적으로 공식화하면서 본격 비판받기 시작했다. 이 관점 아래에서는 다르게 소통하는 사람의 지식과 판단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자폐증 연구자 M. 레미 예르조는 인지 과학이 자폐인을 ‘서사적 상태’, 즉 의미 있는 자기 인식을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로 규정해왔다고 비판했다.
이는 자폐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증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편견이다. 언어가 곧 온전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가정이 그 뿌리에 깔려 있다.
몸짓, 반복 소리, 감정… 언어 너머의 진짜 소통
연구자들은 자폐인이 다양한 비언어적 방식으로 의미 있는 소통을 한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고 말한다.
리듬감 있는 반복 움직임이나 소리인 ‘스티밍(stimming)’, 단어와 문장을 되풀이하는 ‘반향언어(echolalia)’는 불편함·기쁨·유머·집중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특정 관심사에 깊이 몰입하는 방식 역시 정체성과 연결감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는 감정이 사고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인식의 근본이라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느낌과 감각도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일부라는 의미다.
루 하비 교수 연구팀 역시 음성 언어가 부족하거나 충분하지 않을 때 예술, 놀이, 함께 존재하는 행위 자체가 더 의미 있는 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단 너머로, ‘어떻게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
연구자들은 임상 진단이 여전히 의료·교육 서비스 접근의 관문으로서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진단만으로는 자폐인이 자신의 필요를 어떻게 경험하고 표현하는지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이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됐는가”가 아닌, “이 사람에게 어떻게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로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 전환은 교육 현장에서 장애 요인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효과적인 지원 방식을 도입하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된다. 정책 차원에서도 진단, 특수 교육, 취업 지원에 이르기까지 더 정교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연구자들은 자폐인을 위해 설계된 다양한 소통 수용 방식이 비자폐인에게도 유익하다고 말한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다양성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음성 언어만을 ‘진정한 소통’으로 보는 편견이 이 틀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면, 우리는 자폐인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계속 놓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