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원유 물동량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106일 만에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이란이 미국과의 종전 양해각서(MOU)에 따라 선박 통항 신청 접수를 개시하면서, 해협 안쪽에 발이 묶여 있던 한국 선박 24척의 탈출 전망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는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희망하는 상선은 이란이 신설한 페르시아만해협청(PGSA)을 통해 사전에 통항 요청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PGSA는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24시간 상시 접수 체계를 가동하고 있으며, 접수된 신청을 최우선으로 신속 처리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이란 종전 MOU 제5조에 근거한다. 해당 조항은 MOU 서명과 동시에 60일 동안 상선에 대해 통항료를 전면 면제하고 안전 통항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전 MOU 공식 서명식은 6월 19일 스위스에서 개최될 예정으로, SNSC는 서명에 앞서 해당 조항을 선제적으로 이행하는 형태로 신청 제도를 시행했다.
하루 3,000척에서 30척으로…106일 봉쇄의 충격
호르무즈 해협의 일상적인 선박 통행량은 하루 약 3,000척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협 통제를 강화하면서 4월 한 달간 실제 통과 선박은 약 190척에 그쳤다. 사실상 봉쇄에 가까운 수준으로 통행량이 급감한 것이다.
이란은 4월 하순 PGSA를 신설해 선박 통항을 자국이 관리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전면 봉쇄 대신 ‘통제된 통과’를 허용하는 형태로, 이란이 설치한 기뢰 위험을 피한 이란 연안 대체 항로를 이용하는 구조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종전 협상 국면 진입 후 하루 최대 14척이 통과하는 데 그친 날이 최근 중 ‘최대치’로 기록됐다.
한국 선박 24척, 대부분 신청 완료…정부 “신속 처리” 요청
현재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갇혀 있는 한국 선박은 총 24척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이들 선박을 운용하는 국적 선사 대부분이 PGSA에 통항 허가 신청을 이미 마친 상태다. 한국 정부도 이란 당국에 한국 선박의 우선·신속 처리를 공식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통항이 이뤄질 경우 정부는 실시간 교신을 통해 선박의 항로와 안전을 안내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란 당국의 신속 처리 방침과 60일 무료 통항 보장 기간을 감안할 때, 한국 선박이 예상보다 빨리 해협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60일 무료’ 이후가 진짜 문제…PGSA의 이중성
해운·보험 전문가들은 60일 무료 통항 조치의 이면에 주목한다. 한국 보험업계는 전쟁 위험 추가 보험료(war risk premium)가 단기간에 정상 수준으로 내려오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뢰 제거 여부와 대체 항로의 실제 안전성이 독립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도 업계 내에서 나온다.
중동·해양 안보 전문가들은 PGSA 시스템 자체를 이란의 새로운 레버리지로 분석한다. 표면상으로는 국제 상선의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는 제도지만, 신청 과정에서 선박의 적하 정보와 운항 패턴이 이란에 축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60일 이후 이란이 어떤 새로운 요율이나 조건을 제시할지는 현재로선 전혀 불투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