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의는 됐다. 그러나 출항 신호는 아직 울리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이 2026년 6월 17일 전자 문서 형태로 원격 서명해 발효시킨 종전 양해각서(MOU)에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 조항이 명시됐지만, 한국 선박 24척과 선원 138명이 실제로 해협을 빠져나오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MOU는 총 14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핵심은 군사작전의 즉시·영구 종식, 호르무즈 해협 자유 통항 보장, 이란의 핵무기 보유 금지, 그리고 60일 이내 최종 평화협정 협상 개시다. JD 밴스 미 부통령은 서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60일 기간이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6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식 서명식이 예정된 가운데, 이 합의가 글로벌 해운 질서를 실질적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방·해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적 개방’과 ‘실질적 개방’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MOU 제5조의 핵심과 이란이 받아낸 ‘경제 패키지’
MOU 제5조에는 서명과 동시에 60일 동안 선박들이 통행료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항할 수 있도록 이란이 조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란이 기뢰 제거 등 복구 작업을 위해 30일의 기간을 설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밴스 부통령은 이미 1,250만 배럴의 석유가 해협을 통과했다며 합의 이행이 시작됐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합의에서 이란이 챙긴 경제적 이익은 상당하다. 미국은 서명 즉시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를 해제하고, 이란산 원유·석유·파생상품 수출 제재를 유예하며, 연동된 은행거래·보험·운송 서비스 제재도 함께 풀기로 했다. 여기에 이란의 대외 동결자산 사용권 회복과 함께, MOU 제6조에는 약 3,000억 달러(약 457조 원) 규모의 재건기금 조성까지 명시됐다.
미국 내 강경파가 “이란이 해협 통제권을 무기로 최대한의 경제적 보상을 끌어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다.

선박 24척·선원 138명이 직면한 세 가지 장벽
한국 선박 24척은 2026년 2월 28일부터 4개월 가까이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였다. 이 중 HMM 화물선 나무호는 5월 4일 이란의 공격을 받아 두바이항으로 예인된 채 수리 중이다. 한국인 선원은 외국 선박 승선 인원 34명을 포함해 총 138명으로, 장기간 전쟁 상태에 갇혀 있던 만큼 심리적·육체적 피로도가 극도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실제로 출항하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은 세 가지다. 첫째, 기뢰 제거 문제다. MOU는 이란에 30일 내 통항을 전쟁 전 수준으로 복원하도록 요구하지만, 해양 안보 전문가들은 기뢰 완전 제거에 최대 6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고 본다. 국제해사기구(IMO)도 종전 합의를 환영하면서도 안전 조치 완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둘째는 항로 문제다. 전쟁 기간 미국은 오만 연안 항로를, 이란은 자국 연안 항로를 각각 권고·허용했다. MOU 이후에도 단일 가이드라인은 없다. 어느 항로를 택하느냐에 따라 군사적 보호 주체, 법적 책임, 보험 적용 여부가 달라진다. 한국 정부와 선사들이 가장 민감하게 검토할 지점이다.
병목 리스크와 한국 정부의 역할
세 번째 변수는 대규모 병목 현상이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전 세계 선박은 최소 500척에서 최대 1,000척으로 추산된다. 전쟁 이전 평시 하루 통항량이 약 130척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꺼번에 출항이 몰릴 경우 충돌·좌초·화재 등 해양 사고 위험이 급증한다. 출구 쪽 오만·UAE 항만의 수용 능력 문제도 함께 불거질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의 구체적 내용 파악에 착수했고, 미·이란 간 후속 논의도 면밀히 추적 중이다. 한국 선박이 출항에 나설 경우 실시간 통신과 항로 안내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외교부·해양수산부·국방부·선사·보험사가 동시에 움직이는 합동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사안이다.
미·이란 종전 MOU는 4개월간 멈춰 섰던 글로벌 해운 시계를 재가동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기뢰 제거 일정, 항로 확정, 병목 관리라는 세 가지 실무 과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한국 선박 24척과 선원 138명의 귀환은 여전히 시간표 없는 기다림이다.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