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와 겨우 흑자 체력을 회복한 K-조선업계가 예상치 못한 내부 충격을 마주했다.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내놓으라는 노동조합의 요구가 공식화되면서, 미래 경쟁력 투자와 분배 사이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불씨, 조선소 턱밑까지 번지다
이번 갈등의 도화선은 조선업 바깥에서 당겼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기로 합의한 데 이어, 삼성전자 노조는 15%를 요구하며 협상 수위를 끌어올렸고, 현대자동차 노조는 순이익의 30%를 달라고 압박하면서 업종 간 성과급 경쟁이 본격화됐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2026년 교섭 요구안에 영업이익 30% 성과 배분과 함께 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 상여금 100% 인상, 경상비 20억 원 출연을 한꺼번에 못 박았다.
업계에서는 HD현대삼호와 한화오션 등 경쟁사 노조도 유사한 수준의 요구안을 제시할 것으로 분석한다.
수익 구조가 다르다…조선업의 딜레마
시장에서는 반도체와 조선업의 수익 구조 차이를 이번 갈등의 핵심 변수로 짚는다.
수십 퍼센트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반도체와 달리, 조선업은 수주부터 인도까지 수년이 걸리는 구조인 데다 현재 영업이익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재계에서는 영업이익이 회사 통장에 그대로 쌓이는 현금이 아니라 감가상각과 향후 재투자 부담이 반영된 회계상 수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10여 년의 적자 늪에서 이제 막 회복하는 단계에서 이익의 3분의 1을 즉시 현금으로 내어주기에는 재무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경영진 측의 일관된 입장이다.
노란봉투법·하청 노조까지…이중·삼중 압박
2026년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은 갈등의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판단될 경우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규정이 적용되면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하청 노조도 원청 정규직과 동일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압박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이미 2025년 협력사 1만여 명에게 원·하청 동일 비율로 성과급을 지급해 890억 원 규모의 선례를 만들었고, 이 기준이 올해 협상의 하한선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섭 상대가 정규직 노조 하나에서 하청 노조까지 확대되면서 기업이 감당해야 할 인건비 총액은 사실상 두 배, 세 배로 불어나는 셈이다.
시장에서 진짜 위기로 보는 지점은 따로 있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에 맞춰 암모니아·수소 연료 기반 친환경 선박을 개발하고, 미국 함정 시장 진출을 겨냥한 MASGA 프로젝트를 위해 현지 조선소를 인수하려면 조 단위의 투자 실탄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다. 성과급으로 수천억 원이 빠져나가면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반격 사이에서 투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경고가 업계 안팎에서 반복되고 있다.